1809년(순조9)에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호남과 호서 지역이 특히 심했다. 순조는 구황책(救荒策)을 마련하도록 지시하면서 이렇게 하교하였다.
“금년 양호(兩湖)의 참혹한 흉년의 정상을 어찌 연분 장계(年分狀啓)를 기다린 뒤에야 알 수 있겠는가. 이제 추수가 다 끝이 나서 곧 타작마당에 오르게 되었으니, 백성의 황급한 마음이 필시 수확하기 전보다 배나 극심할 것이다. 밤낮으로 애타는 마음에 음식도 달지 않고 잠자리도 편치 않다.” 《순조실록 9년 9월 15일》
또 30여 동안의 관직 생활을 기록한 김재일(金載一, 1749~1817)의 《묵헌일기(默軒日記)》에도 1809년 5월부터 6월까지 비가 오지 않아 7차례나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1809년 7월 8일과 10일 자의 일기는 흉년으로 인한 작자의 애타는 심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읍리(邑吏) 김익곤(金益坤)이 찾아왔기에, 농사 형편을 물어보니, 그가 대답하기를 ‘가히 살년(殺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가(市價)가 한 냥에 쌀은 2말이고 보리는 5말이며, 기타 우마(牛馬)와 잡물(雜物) 가격은 더욱 헐값입니다.’ 하였다. 듣고는 매우 놀라고 걱정스러웠다.”
“집안 편지를 받아보니, 가족들이 무고하나 오랜 가뭄으로 겨우 10두락의 논만 이양하였는데 곧바로 반은 말라 버렸고 콩은 애초에 심지도 못해 살년(殺年)을 면치 못했기에, 마을의 상황이 참혹하여 차마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지없이 걱정된다.”
작자 김재일은 전라도 해남(海南) 출생으로, 1786년(정조10) 문과에 급제한 뒤로 30여 년 동안 관직 생활을 하였지만, 크게 현달하지는 못했다. 그는 당시 가족을 고향 해남에 두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 벼슬살이하고 있었다. 1809년 전국적으로 크게 흉년이 들었는데, 농업이 주업인 호남은 특히 피해가 심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을 일기에 적어 그 심각성을 기록하고 이를 시로 형상화하였다.
위의 시는 앞의 기록과 비슷한 시기에 창작되었다. 그의 문집 《묵헌유고(黙軒遺稿)》 권1에 실려 있는데, 화려한 수사보다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솔직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09년, 호남과 호서에 큰 흉년이 들었다. 하지만 해남을 포함한 바닷가 근처 고을은 그 피해가 훨씬 심각하였다. 그 처참한 상황을 3, 4구에서 “마을에 연기가 나지 않음은 불을 금해서가 아니고, 사람들은 대부분 곡기 끊어 억지로 신선 되었네.”라고 묘사하였다. 곡식이 없어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는 상황을 ‘한식날 불을 금하는 풍속’에 비유하고, 굶주림으로 야위어가는 백성들을 ‘신선이 되기 위해 곡기를 끊은 한(漢)나라 장량(張良)’에 비유한 대목은 당시 기근의 참혹함을 알리는 역설적 표현인 동시에 유학자의 풍류가 담긴 표현이기도 하다.
5, 6구에서는 추상적인 ‘흉년’이라는 단어를 작자의 개인적인 비극으로 시선을 좁혀 “늙은 아내는 편지로 삼생(三生)의 이별을 고하고, 어린 자식은 울며 온전한 밥 한 그릇을 찾누나.”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이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고향에 있는 늙은 아내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다음 생애를 기약하고, 어린 자식은 한 끼라도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도 이루지 못해 울며 보챈다. 작자는 아마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아내와 자식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꼭 자신 때문인 듯하고, 이를 듣고도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이 참으로 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7, 8구에서 “잠시만이라도 죽지 않고 살아남길 바라노니, 하늘이 성군(聖君)을 내리신 것도 바로 올해라네.”라고 하며, 조금만 참고 버티면 금방 태평 시대가 올 거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황하가 맑아지면 성인이 출현한다.[黃河淸而聖人生]’라는 말처럼 성군이 출현하면 태평 시대가 전개된다는 의미를 끄집어낸 것이다. 이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다. 실제 이 시 바로 앞에 기록된 〈왕세자의 탄생 소식을 듣고 감회가 일어 읊다[聖嗣誕生感吟]〉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효명 세자(孝明世子)의 탄생을 알려 성군의 출현 소식을 전했다. 고통받는 가족과 백성들에게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생존의 의지를 불어넣은 것이다.
식량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한식날처럼 연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 신선이 되길 원치 않았으나 굶주림으로 수척해져 신선이 된 백성들, 굶어 죽을 것 같아 미리 이승에서의 이별을 고하는 아내, 밥 한 그릇만이라도 제대로 먹고 싶어 울며 보채는 자식. 이런 비극적 현장을 작자는 당시 호남 지역의 기근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식인으로서 겪는 처절한 슬픔과 무력감을 해학적이면서도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려내었다.
오늘날 우리는 밥 한 그릇을 걱정하지 않는 물질적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신적 빈곤과 압박감으로 인해 어쩌면 그 옛날 사람들보다 더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때 작자가 보여준 백성에 대한 연민, 가족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아내려는 의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각자의 ‘흉년’과 같은 시기를 지날 때 필요한 것은, 나를 걱정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용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