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는 조선의 대표적인 문장가이다.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숙부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에게 수학하였다. 천재적인 인물로 알려진 이가환(李家煥, 1742∼1801)이 그의 아들로, 문장은 물론이고 천문학, 수학에도 정통한 인물이다. 그러나 1801년 신유사옥(辛酉史獄) 때 옥사(獄死)하면서 이용휴, 이가환 부자의 학문과 문장은 세상에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였다.
이용휴는 성호 이익의 학문을 계승하였지만, 출사를 포기하고 평생을 포의로 살았다. 조부 이하진(李夏鎭)이 경신환국(庚申換局, 1680) 때 유배되어 죽고, 숙부 이잠(李潛)이 갑술환국(甲戌換局, 1694) 때 옥사하는 등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용휴가 출사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현실도피적인 태도를 취했을 법한데, 이용휴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았다. 훗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이용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영조(英祖) 말엽, 당시 명망이 으뜸으로, 학문을 닦아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자들이 모두 찾아와서 문장을 다듬었다. 몸은 포의(布衣)로 있었지만 30년 동안이나 문단(文壇)을 장악했으니 예부터 없었던 일이었다.”(「정헌묘지명(貞軒墓誌銘)」)
위의 문장은 이용휴가 신(申)군에게 써준 기문(記文), 「당일헌기(當日軒記)」의 첫머리이다. ‘하루가 쌓여서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계절이 모여서 한 해가 되니’, 날마다 묵묵히 수양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이 문장의 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이어진다. “이미 지나간 것은 되돌이킬 방법이 없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비록 3만 6천 일이 이어져 온다고 하더라도, 그날에는 각기 그 날에 해야만 하는 것이 있으니, 실로 다음날로 미룰 여력이 없다.”
삶을 산다는 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지나가버렸을 뿐만 아니라, 경험과 불완전한 기억으로 존재하는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부정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내지 환상으로 오늘을 헛되이 보내기 쉽다. 몸은 현재에 있지만, 머릿속은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느라 분주하다. 그래서 현재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 채, 오늘이 ‘당일(當日)’이 되지 못하고, ‘공일(空日)’이 되어 버린다. 깨달음을 얻은 현자(賢者)들이 이구동성으로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동화극 <파랑새>의 틸틸과 미틸은 파랑새를 찾아 과거도 가보고 미래도 가보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야 자기 집에 있던 새가 파랑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틸틸과 미틸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용휴는 같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날(日)에 길흉(吉凶)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것을 쓰는 사람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매일매일 현재에 충실하여 착실하게 수행하다 보면, 결국 그 날들이 모여서 길(吉)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길일(吉日)로 할 것인지, 흉일(凶日)로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