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한국고전번역원

조여일 | 입력 : 2018/03/21 [08:35]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오경가(五更歌)

오경에 닭이 울고 종소리 들려오니
일어나 이불 끼고 날 밝기를 기다리네
아침 온다고 시름 곧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름은 밤이 되면 그대로 더 깊어만 가네

 

五更鷄叫趁鍾聲오경계규진종성
起擁衾裯坐達明기옹금주좌달명
不是朝來愁便去불시조래수변거
愁仍夜暗倍冥冥수잉야암배명명

 

-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사숙재집(私淑齋集)』 권1

   
해설

   세조에서 성종 때 주로 벼슬하였던 강희맹이 지은 5수의 연작 절구 가운데 마지막 수이다. 강희맹은 판서(判書)와 찬성(贊成)을 역임하고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서거정(徐居正, 1420~1488) 등과 함께 당대의 문단을 이끌었는데, 특히 『금양잡록(衿陽雜錄)』, 『훈자오설(訓子五說)』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인이다. 이 시의 앞에는 시를 짓게 된 사정을 밝히는 짧은 서문이 있다.

 

“임인년 겨울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슬픔이 사무쳐 오경가를 짓고 규방의 벽에 썼다.[歲壬寅冬, 夫人歿, 傷悼之極, 因作五更歌, 書諸閨壁.]”

 

   서문을 통해 강희맹이 59세 되던 1482년(성종13) 순흥안씨(順興安氏)를 사별하고 밤마다 부인 생각에 잠 못 이루는 고통을 다섯 수의 시로 읊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9세 때 부인과 결혼하여 40년을 살 맞대고 살았으니, 부인 없이 홀로 누운 밤이 얼마나 슬프고 쓸쓸하였을지 상상이 간다. 이부자리에 함께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잠이 들곤 하였을 테니 부인이 떠난 빈 자리가 여실히 느껴졌을 것이다. 강희맹은 부인을 잃은 지 몇 달이 못 되어 세상을 떠났다.

 

   이 연작시의 특징은 ‘初更人定四壁靜(초경인정사벽정)’, ‘二更欲睡睡不來(이경욕수수불래)’, ‘三更不寐坐支頤(삼경불매좌지이)’, ‘四更猶未膝添床(사경유미슬첨상)’ *, ‘오경계규진종성(五更鷄叫趁鍾聲)’ 등처럼 각 수의 머릿구에 초경(初更)부터 오경(五更)까지 시간을 특정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고통을 고조(高調)시키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본래 하루 24시간을 2시간씩 나누어 자시(子時), 묘시(卯時), 오시(午時), 유시(酉時) 등 십이지(十二支)로 말하였는데 특별히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는 따로 2시간씩 다섯으로 나누어 오경(五更) 혹은 오고(五鼓), 오야(五夜)라고 하였다. 오고는 주간에는 종을 치고 야간에는 북을 친 데서 나온 말이고, 오야는 십간(十干) 가운데 갑을병정무(甲乙丙丁戊)를 가지고 갑야(甲夜), 을야(乙夜), 병야(丙夜), 정야(丁夜), 무야(戊夜)로 나눈 것인데 당 문종(唐文宗)이 “갑야에 일을 처리하지 않고 을야에 책을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임금이 되겠느냐?”라고 한 을람(乙覽)의 고사가 유명하다.

 

   이 시와 비슷한 연작시를 북송(北宋) 때 소식(蘇軾)의 「강월오수(江月五首)」에서 볼 수 있다. 본래 두보(杜甫)가 「월(月)」시에서 ‘사경에 산이 달을 토하니 밤의 끝에 물빛이 누대에 밝도다[四更山吐月, 殘夜水明樓.]’라고 노래한 것을 소식이 고금(古今)의 절창(絶唱)이라고 탄복하면서 ‘일경산토월(一更山吐月)’부터 ‘오경산토월(五更山吐月)’까지 머릿구로 삼아 다섯 수로 지은 것이다. 다만 이렇게 머릿구를 가지고 부연한 소식의 시를 놓고 지리(支離)하다고 비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수 한 수가 매우 청절(淸絶)하다고 반대 의견을 내놓은 사람도 있어 흥미롭다. 한편 강희맹의 「오경가」를 의작(擬作)한 성현(成俔, 1439~1504)과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의 시가 문집에 수록되어 있어 같이 읽어볼 만하다.

 

*‘初更人定四壁靜(초경인정사벽정)’, ‘二更欲睡睡不來(이경욕수수불래)’, ‘三更不寐坐支頤(삼경불매좌지이)’, ‘四更猶未膝添床(사경유미슬첨상)’: 번역은 다음과 같다. ‘초경에 인정이라 사방이 고요한데’, ‘이경에 잠들려도 잠은 안 오니’, ‘삼경에 잠 못들어 턱 괴고 앉았으니’, ‘사경에도 침상에 무릎을 못 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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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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