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머거리로 살아가기

한국고전번역원

조여일 | 입력 : 2017/12/18 [07:39]

                                            귀머거리로 살아가기

   
번역문

   무릇 ‘농(聾)’이란 한 글자를 사람들은 모두 병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만은 홀로 아름답게 여기니 어째서인가? 귀가 먹으면 사람들에게 비록 선악과 시비가 있더라도, 나는 들은 게 없는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비록 장단과 득실이 있더라도, 들은 게 없는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하지 않는다. 남의 악담과 패욕이 저절로 내 몸에 미치지 못하니, 내 몸은 이 때문에 저절로 편안해지고, 마음도 이 때문에 저절로 바르게 된다. 그래서 거처하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모두 합당하기 마련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남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도 내 입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것이요, 남에게 실패를 당하는 일도 내 혀로 인해 당하는 것이다. ‘농’이란 한 글자를 굳게 지키고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남들이 모두 실패나 모욕을 당하더라도 나는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모욕도 당하지 않고 실패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로 보면 ‘농’이란 글자에 담긴 뜻 또한 어찌 깊고 아름답지 않은가?

원문

夫聾之一字, 人皆謂病也. 而我獨謂美也, 何者? 聾則人雖有善惡是非, 我無聞故不言傳於人, 人雖有長短得失, 無聞故不言傳於人. 人之惡談悖辱, 自不及身, 身以此而自安, 心以此而自正, 所居所到, 無不合宜, 豈不美哉? 逢人之辱, 由我口而逢也, 見人之敗, 緣我舌而見也. 聾之一字, 固守勿失, 則人皆見敗逢辱, 而我則自少至老, 無辱無敗, 以此觀之, 則聾字之意, 亦豈無深且美也?

-장신강(張信綱, 1779~1856), 『농재잡사(聾齋雜詞)』 「농재음(聾齋吟)」

   
해설

   세 치의 혀를 놀리는 일은 물리적으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말이 지니고 있는 영향과 후폭풍을 생각한다면, 아무 생각 없이 쉽사리 놀리지 말아야 하는 것 또한 세 치의 혀이다. 그래서일까? 어린아이들을 위한 교재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도 18장을 아예 「언어편(言語篇)」으로 달리 설정하였다. 그러고는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요, 몸을 망치는 도끼이다.[口舌者禍患之門, 滅身之斧也.]”라는 등등의 구절을 담았다.

 

   18~19세기를 살다간 농재(聾齋) 장신강이란 분 역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을 무척 싫어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숫제 귀머거리를 자처하였으니, 귀머거리들이 대부분 벙어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았으리라. 아무튼 듣는 게 없어야 말하지 못하고, 말한 게 없어야 모욕을 당하거나 낭패를 볼 일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농재는 귀머거리를 자처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본질적으로 따져 보면, 결국 남에게 말을 전하지 않겠다는 굳센 의지의 표출이다. 그래서 들려도 듣지 못한 것처럼 마음에 묻어두고 끝내 발설하지 않겠다는 근원적인 대처다. 농재가 인식한 ‘농’의 가치는 진정 들리지 않는 바로 귀머거리 상태가 아니라, 들은 말을 남에게 전하지 않는 벙어리 같은 행위에 오롯하였던 것이다.

 

   세상에 어찌 농재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랴? 문계락(文啓洛)은 『농재잡사』에 수록된 「우거재화운(愚擧齋和韻)」의 서문(序文)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주인옹은 과연 ‘농(聾)’ 자의 뜻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구려. 그러나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다고 할 수 있으니, 어찌 진짜 귀머거리겠는가? 예를 들면 자신의 몸을 닦고 자식을 훈도하는 도리, 재산을 다스리고 생업을 꾸리는 규범, 사람을 대하고 사물에 접하는 의리, 화목하고 겸양하는 풍모, 청렴하고 단아한 절도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처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 밝은 말도 여기에 있고 생각 깊은 말도 여기에 있도다. 한 조각 마음속에서 유독 이 부분은 밝고 오로지 저 부분은 어두우니, 그렇다면 그가 귀머거리인가 아닌가는 그의 마음의 존재 여부에 달렸을 따름이다.
[主翁果不越乎聾一字之外也. 然而天賦可聰, 豈其眞聾也? 如修身訓子之道, 治産作業之規, 待人接物之義, 敦睦推讓之風, 淸廉端雅之節, 無不關心隨處側耳, 明言在玆, 念言在玆. 一片腔子, 獨聰於此, 專暗於彼, 然則其聾與不聾, 願其心之存不存如何耳.]

 

   농재는 실제로 곳곳에 관심을 기울였으니, 그 결과물로 남은 것 중의 하나가 가사 문학이다. 그는 『농재잡사』에 장편의 가사 15편을 수록하였는데, 도합 1,980구절이 넘는 방대한 양이다. 『농재잡사』에 관해서는 윤병용의 석사 논문 『농재 장신강의 가사 문학 연구』가 자세하다.

 

   농재는 자신과 가문의 문제를 넘어 향촌 사회의 궁핍한 현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이를 가사 문학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세상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인 귀머거리의 위대한 짐짓이었다. 그 결과 문홍범(文洪範)은 『농재잡사』에 수록된 「호정화운(湖亭和韻)」의 서문(序文)에서 다음과 같이 농재를 기렸다.

 

   내가 우연히 이 마을에 이르러 비에 막혀 유숙하게 되었다. 주인에게 옛날 이야기책을 보여 달라고 청하자, 집안의 어린 사내종을 시켜 한 권의 책자를 가져오게 하였으니, 바로 『농재잡사』였다. 임시로 한 편을 대충 살펴보니, 민간의 환곡 폐해에 관한 일, 집안에서 행해야 할 일, 노소간에 분별해야 할 일, 농사와 학문을 권장하는 일, 주색을 경계하는 일 등등 말하지 못할 것이 없는 일들이었다. 만일 마음이 트이고 통달한 어른이 아니라면, 어찌 감히 한 가지 일에 대해 반 마디라도 할 사람이 있으랴? 나는 어리고 배움이 없는 무리지만 한 번 읽어보고 나 자신도 모르게 막혔던 마음이 열렸으니, 지금 세상에서 이 노인이야말로 후생들에게 모범이 되고 후학들을 개발시켜줄 어르신이 아니겠는가?
[余偶到此村, 滯雨留宿. 使主人請見古談, 則使家僮持來一冊子, 卽『聾齋雜詞』也. 權獵覽一篇, 民間還瘼事也, 家間行用事也, 老少分別事也, 勸農勸學也, 酒色警戒事也, 無不可言之事也. 若非心竅洞達之翁, 豈敢有一事半言之人哉? 余以年少無學之輩, 一次翫味, 自不知茅塞之開, 今世斯翁, 豈非法後生開來學之翁乎?]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까닭은 두 귀로 들은 많은 얘기를 한 입으로 조금만 말하라고 그리 만들었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있다. 따끔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니, 농재의 삶과 관련해 되새겨볼 만하다.

 
글쓴이유영봉(劉永奉)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주요 저서
  • 『고려문학의 탐색』, 이회문화사, 2001
  • 『하늘이 내신 땅』, 문자향, 2001
  • 『당나라 시인을 만나다』, 범한서적주식회사, 2009
  • 『천년암자에 오르다』, 흐름출판사, 2013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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