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선생의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한국고전번역원

내일을여는신문 | 입력 : 2017/08/28 [07:29]

 

             퇴계 선생의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번역문

   선생은 50세가 될 때까지도 집이 없었다. 처음에는 하봉(霞峯)에 터를 잡고, 중간에 죽곡(竹谷)으로 옮겼다가, 마침내 퇴계(退溪) 가에 자리를 잡았다. 집 서쪽 시내 앞에 정사(精舍)를 짓고 ‘한서(寒棲)’라 이름하였고, 샘물을 끌어다 못을 만들고 ‘광영(光影)’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매화와 버들을 심고 세 갈래로 길을 내었다. 앞에는 탄금석(彈琴石)이 있고, 동쪽에는 고등암(古藤巖)이 있는데, 시내와 산이 아름다워 마치 딴 세상 같았다. 병진년(1556, 명종 11)에 내가 처음으로 그곳에 가서 절하고 뵈었는데, 선생께서 주위에 책을 두고 향을 피우고 조용히 앉아 계신 모습이 그대로 홀연히 생을 마칠 듯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벼슬한 사람인 줄도 몰랐다.

원문
先生五十歲, 尙未有家. 初卜于霞峰, 中移于竹谷, 竟定于退溪之上. 宅西臨溪作精舍, 名曰寒棲; 引泉爲塘, 名曰光影. 植以梅柳, 開以三徑. 前有彈琴石, 東有古藤巖, 溪山明媚, 宛然成一別區焉. 丙辰歲, 誠一始展拜于此, 左右圖書, 焚香靜坐, 翛然若將終身. 人不知其爲官人也.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학봉집(鶴峯集)』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

   
해설

   근래에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우리 삶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삶의 방식을 단순화했을 때 삶의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문화 흐름이다. 넘쳐나는 물건에, 밀려드는 일에, 원치 않는 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이제 자신의 삶과 생활 방식을 되돌아보고 생활을 단순하게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 채우기 위해 살아온 삶이 오히려 마음의 공허함을 불러온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이 이제는 비움으로써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고 많은 사람과 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이 꽤 현대적이고 이국적인 풍조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전통 속에는 선조들이 살아온 단출한 생활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스승의 언행을 살피고 남긴 「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을 통해 퇴계의 정제된 생활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 선생은 성품상 환하게 툭 터진 것을 좋아하고 덮거나 가려지는 것을 싫어하시어 나무 같은 것들도 반드시 모두 솎아 내고 베어 내게 하여 앞을 가리지 않도록 하였다.
[先生性喜通明而惡蔽障, 至如樹木之類, 必令䟽剔剪去, 不使翳前.]

 

○ 선생께서는 본디 검소함을 숭상하여 질그릇에 세수하고, 부들자리에 앉았으며, 베옷에 끈으로 된 띠를 묶고 칡을 엮어 만든 신발을 신고 대지팡이를 짚는 식으로 담박하게 지냈다. 시냇가의 집이라야 겨우 십여 가(架)로 된 작은 규모였다. 혹한과 장맛비는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인데도, 선생은 여유롭게 지내셨다. 영천 군수(永川郡守) 허시(許時)가 가서 찾아뵙고는 몹시 놀라면서 여쭈었다.
    “이렇게 좁고 누추한 곳에서 어떻게 견디십니까?”
그러자 선생께서는 천천히 말씀하셨다.
    “익숙해진 지 오래라 불편한 걸 못 느낀다.”
[先生雅尙儉素, 盥用陶器, 坐以蒲席, 布衣絛帶, 葛屨竹杖, 泊如也. 溪上之宅, 僅十餘架. 祁寒暑雨, 人所不堪, 而處之裕如也. 永川郡守許時歷謁, 大驚曰 : “阨陋如此, 何以堪之?” 先生徐曰 : “習之已久, 不覺也.”]

 

○ 거처는 항상 정돈되어 있고 고요하였으며, 궤안은 늘 깔끔했다. 벽에는 책이 가득하였으나 늘 가지런하고 어질러진 적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반드시 향을 피우고 정좌하였으며, 종일토록 책을 읽으며 나태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居處必整靜, 几案必明淨. 圖書滿壁, 常秩秩不亂. 晨起必焚香靜坐, 終日觀書, 未嘗見其惰容.]

   퇴계 선생은 사는 곳과 입는 것만 소박하고 정갈한 것이 아니었다. 식생활도 늘 소박한 음식을 즐겼는데, 스스로 “나는 정말 박복한 사람인가 보다. 맛 좋은 음식을 먹으면 기가 꽉 막혀 체한 것 같아, 반드시 쓰고 담박한 음식을 먹어야 장과 위가 편안하다.[我眞福薄之人. 啖厚味則氣如痞滯, 必啖苦淡然後方利膓胃.]”고 말할 정도였다. 맛 좋은 음식보다는 자신의 몸에 맞는 음식을 찾아 섭생을 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소박한 식생활은 손님이 찾아왔다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집안 형편에 맞추어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손님을 대접했고, 찾아오는 사람이 누구든 평소 드시던 음식을 나누며 자신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다.

 

   작은 집, 단출한 살림, 소박한 식생활은 선생의 인품과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선생께서는 이미 지극히 덕성을 함양하였기에 일을 여유롭게 처리하였다. 아무리 급박한 경우에 처해서도 정신이 한가하고 뜻이 안정되어 정신없이 서두르는 모습이 없었다.
[先生充養已至, 遇事裕爲. 雖在急遽之間, 神閒意定, 無胡亂忽卒底氣像.]

 

○ 선생께서는 온후하고 선량하고 공손하고 신중하며, 단정하고 자상하고 느긋하고 편안하여, 몸에 거칠고 태만한 모습이나 분개하고 증오하는 기운을 지닌 적이 없었다. 바라보면 엄숙하여 존경할 만한 법도가 있었고, 대해 보면 따스하여 사랑을 느낄 만한 포용력이 있었다.
[先生溫良恭謹, 端詳閑泰, 暴慢之容, 忿戾之氣, 未嘗加諸身. 瞻之也, 儼然有可敬之儀則; 卽之也, 溫然有可愛之容德.]

 

○ 누군가 질문을 하면 아무리 별것 아닌 말이라도 반드시 잠시 생각한 뒤에 대답하였으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한 적이 없었다.
[人有質問, 則雖甚淺近說話, 必留意少間而答之, 未嘗應聲而對.]

   퇴계 선생은 의식주가 정리된 단출한 생활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그리고 이런 여유 속에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이런 여유가 있었기에 맑은 정신으로 이치를 분명하게 가리고 의리를 정밀하게 따질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빈틈을 내는 것이 삶에 숨통을 틔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요즘 몇 년간 쟁여 두었던 이런저런 짐들을 꺼내 정리하고 있다.

 
글쓴이하승현(河承賢)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주요 저·역서
  • 『화담집교주(花潭集校注)』, 상해고적출판사, 2012
  • 『후설(喉舌)』(공저), 한국고전번역원, 2013
  • 『눈 셋 달린 개』, 한국고전번역원, 2015
  • 『잠(箴), 마음에 놓는 침』, 한국고전번역원, 2015
  • 『승정원일기』(영조 5) 공역, 한국고전번역원, 2010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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