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봄이 다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 "2020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고전명구 부문 당선작"

내일을여는신문 | 입력 : 2021/03/24 [09:07]

                                          이런 봄이 다 있습니다

   
이 춘망만은 시기와 형편에 따라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마음껏 즐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슬퍼 눈물도 흘리며,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노래도 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울 수도 있다. 각각 느끼는 유에 따라 사람을 감동하게 하니 그 심서(心緖) 천만 가지 그지없네.

 

 

唯此春望 隨物因勢 或望而和懌 或望而悲悷 或望而歌 或望而涕 各觸類以感人兮 紛萬端與千緖

유차춘망 수물인세 혹망이화역 혹망이비려 혹망이가 혹망이체 각촉류이감인혜 분만단여천서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권1 <춘망부(春望賦)>

   
해설

   또 봄을 빼앗겼다. 몇 년간 꽃구경 좀 할라치면 불어오는 미세먼지에 외출을 삼갔는데, 올해는 ‘집콕’하는 사이에 봄을 떠나보냈다. 오랜 만에 학교에 갔다 돌아오는 길, 피었는 줄도 몰랐는데 이미 낙화를 준비하는 꽃나무를 보고 이렇게 문득 떠나버리는 봄도 있나 싶어 허망했다. 상춘객들이 몰릴까 전국의 꽃축제 명소들이 빗장을 걸어잠갔고, 매해 몇 십만명이 모이는 여의도 벚꽃 길에는 노란 테이프가 둘러졌다. 애써 피어난 유채꽃들은 트랙터로 갈아엎었는데 그 면적이 축구장 80여개를 넘었다고 한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당연한 조치였지만, 역사상 이런 봄의 수난이 있었던가 싶어 마음이 쓰렸다. 자고로 봄이란 피어나는 아름다움 덕택에,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아름다워지는 계절이 아니었던가. 바라봐줄 이가 없는 봄은 왠지 봄이 아닌 것만 같았다.

 

   이러한 때에 이규보가 풀어낸 봄의 정경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 「춘망부(春望賦)」 는 고려의 문인인 이규보가 봄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작가는 높은 곳에 올라 마을에 찾아온 봄을 바라본다. 날이 따뜻해져 동식물은 씻은 듯 맑은 생명력을 뽐내고, 오가는 사람들은 정겹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민망하고 답답하기만 하다며 바라본 '춘망'의 회포를 다양하게 풀어낸다. 봄은 사치스러운 화려함도 있고, 애원도 있고, 애상과 그리움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여름은 너무 덥고, 가을은 견딜 수 없이 쓸쓸하고 겨울은 지나치게 춥지만 '춘망'만은 시기와 형편에 따라 어떤 이는 바라보며 마음껏 즐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슬퍼 눈물도 흘리며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노래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울 수도 있어서 각각 느끼는 감정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니, 그 마음이 뻗어나가는 것이 천만가지가 그지없다고.

 

   돌이켜보면 봄이 언제고 아름다웠기만 했나 싶다. 유명한 시 구절처럼,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드는' '잔인한 달'이기 때문이다. 소생하는 봄 무기력함에 젖어 안주하려는 이들을 흔들어 깨운다. 내 삶의 속도와 무관하게 또 무심히 봄을 피워내는 자연을 보며 조금은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피어나는 꽃과 다르게 자신은 오늘도 하루 늙어만 가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들곤 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매해 지는 봄을 보며 다시 돌아올 봄을 기대하지 않았나.

 

   우리가 바라는 봄은 어떤 봄인가. 당대의 시인 이백은 <춘야연도리원서>에서 "아름다운 자리를 벌려 꽃밭에 앉고, 술잔을 주고 받으며 달아래에서 취하"는 봄밤의 술자리를 노래하였다. 우리가 이백의 시와 같은 걸작은 남기지 못하지만, 친구들과 달 밝은 봄밤에 한강변에 돗자리를 펴고 모여앉아 '치맥'을 하며 나누던 이야기들은 퍽 즐거웠었다. 그러나 내년 봄에도 우리는 또 다시 마스크를 끼고 서로를 그리워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조금 외롭고 조금 우울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왜 봄이 아니란 말인가. 무력하게 창가에 앉아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그 다음 봄은 더 아름답기를 기대하는 것도, 봄에는 허락된다. 이것이 이규보가 말한 봄의 미덕이다.

 

글쓴이최주영
성균관대학교 고전번역협동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