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의 모르는 줄 모른다

한국고전번역원

조여일 | 입력 : 2017/07/27 [07:30]

 

                      모르는 줄 모른다
   
자신이 어리석음을 깨달은 자는 크게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자신이 사리에 어두움을 아는 자는 아주 어두운 것이 아니다.

 

 

覺自迷者, 非大迷矣, 知自闇者, 非極闇矣.
각자미자  비대미의  지자암자  비극암의


- 원효(元曉, 617~686), 『보살계본지범요기(菩薩戒本持犯要記)』

   
해설

   일이나 공부를 좀 해 보면 알게 된다. 모르면서 아는 줄 아는 게 문제임을. 모르면서 아는 줄 알면, 무엇을 모르는지 알려고도 않는다. 모르면서 아는 줄 알면, 다른 이와의 소통과 공감이 잘될 리 없다. 그러니 문제다. 원효에 의하면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어리석은 줄 모르고 사니,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모르는 줄 모르고 사니, 다른 존재와의 관계가 힘겨울 수밖에. 그러니 어리석은 줄 아는 게, 모르는 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야 새 삶을 열어 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원효는 수많은 저술을 집필했다. 알려진 것은 100여 종 240여 권, 현재 전해지는 것은 20여 종 20여 권이다. 대부분 불교경전에 대한 주석서인데,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를 비롯한 원효의 주석서가 동아시아에서 남아시아의 불교를 수용해 동아시아 불교를 정초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다른 저술들과 달리 『보살계본지범요기』는 특정 경전에 대한 주석서가 아니다. 보살계(菩薩戒), 곧 대승불교의 계(戒)를 지키는 것, 그 참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원효가 직접 논술한 책이다. 그래서 『지범요기』는 원효의 육성이 들리는 듯한 저술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원효가 『지범요기』를 통해 가장 경계한 것 중의 하나가 ‘자고심(自高心)’, 곧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다. 계를 형식적으로 지킨다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을 가진다면, 계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불법을 좀 안다고 하여 나와 남을 차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불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계를 지키고 불법을 따르는 참뜻을 어기게 됨을 논한 것이다. 이처럼 『지범요기』는 불교에 대한 이론적 성찰이면서 불교계에 대한 현실적 비판으로 읽힌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성직자라고 해서, 공직자라고 해서, 지식인이라고 해서 자신을 높이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할 공산이 크지 않을까.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 그 참뜻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참뜻은 뭘까.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우리 자신을 알아차리기 위함인 것 같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자고심을 경계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

글쓴이손성필(孫成必)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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