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拙)에 대하여

한국고전번역원

조여일 | 입력 : 2020/06/03 [11:00]

                                             졸(拙)에 대하여

   
졸(拙)이란 것은 덕(德)이다. 양졸(養拙)은 인(仁)의 일이고, 용졸(用拙)은 지(智)의 일이다.

 

 

拙者, 德也. 養拙, 仁之事. 用拙, 智之事.
졸자, 덕야. 양졸, 인지사. 용졸, 지지사.


- 김상헌(金尙憲, 1570~1652), 『청음집(淸陰集)』38권 「용졸당기(用拙堂記)」

   
해설

   민성휘(閔聖徽, 1582~1647)라는 분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충청도 가림(嘉林 지금의 임천(林川))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그러고는 ‘용졸(用拙)’이라는 자신의 호를 따서 ‘용졸당(用拙堂)’이라고 당호(堂號)를 붙인 뒤 청음 선생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졸(拙)은 보통 ‘옹졸하다’ ‘둔하고 어리석다’ ‘서툴다’ ‘졸렬하다’ 등의 뜻을 갖는 글자로, 뛰어나지 않고 별 볼일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서툴고 둔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꾸민 데 없이 수수하며 앞으로 나서지 않고 더 조심하는 겸손한 모습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용졸’이라는 호는 ‘졸하게 살겠다.’는 겸손의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민성휘 부친의 호는 ‘양졸(養拙)’이고 형의 호는 ‘수졸(守拙)’이며 아우의 호는 ‘지졸(趾拙)’이라는 사실이다. 온 집안이 ‘졸(拙)’을 돌림자로 써서 호를 지은 셈이다. ‘趾’는 발이니 뒤따르겠다는 뜻. 아버지는 ‘졸’을 기르고 형은 ‘졸’을 지키며 나는 ‘졸’을 사용하고 아우는 ‘졸’을 따르겠다니 이쯤 되면 ‘졸’은 그냥 ‘졸’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청음 선생도 기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리라.

  

“좋기도 하다. 공의 뜻이여! 무릇 사람들이 처세함에 있어서는 졸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졸이란 것은 덕이다. 졸함을 기르는 양졸(養拙)은 인(仁)의 일이고, 졸함을 쓰는 용졸(用拙)은 지(智)의 일이다. 아버지는 기르는 것[養]으로 시작하고, 아들은 쓰는 것[用]으로 이었으며, 형은 그것을 지키고[守] 동생은 그것을 따랐다[趾]. 다른 사람들이 흠모하는 것을 나는 멀리하고,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나는 근심한다. 저 사람이 말을 하면 나는 침묵하며, 저 사람이 수고로우면 나는 편안하다. 윗사람이 되어서는 편안하고 아랫사람이 되어서는 순종한다. 그리하여 끝내는 풍속이 맑아지고 폐단이 없어지게 되니, 그렇게 한다면 한 세상을 교화시키는 일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나 자신만을 내세우고 자신의 말만 하려고 든다. 그래서 세상은 도리어 갈수록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지기만 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졸’한 사람이 그야말로 세상을 떠받치는 토대며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쓴이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