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집이 좋아라

한국고전번역원

내일을여는신문 | 입력 : 2020/04/22 [08:58]

                                                나는 내 집이 좋아라

   
번역문

   5일. 맑음. 해가 뜨자 길을 나서 다락원[樓院]에서 점심을 지어 먹고 동정(東亭)에 도착하여 앉아 쉬었다. 녹음이 산에 가득하였고 폭포와 샘의 물소리는 옥이 구르는 듯하였다. ‘나는 내 집이 좋아라.[吾愛吾廬]’라는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이로다.

원문

五日晴. 日出發行, 午炊樓院, 止東亭坐憇. 綠陰滿山, 瀑泉淙琤. 吾愛吾廬, 眞實際語也.

- 오원(吳瑗, 1700~1740), 『월곡집(月谷集)』권10 「유풍악일기(遊楓嶽日記)」

   
해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쯤의 어느 봄날이다. 28세의 청년 오원(吳瑗)은 한양을 출발하여 금강산을 두루 유람한 후 한양으로 돌아온다. 오원은 7~8년 전에도 금강산을 가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다른 한 번은 국상(國喪) 때문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금강산을 제대로 한 번 유람하지 못한 일이 한(恨)이 되었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10년 쯤 지난 뒤에 금강산을 구경하였으니 그 설렘과 흥분이 어느 정도였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유풍악일기(遊楓嶽日記)」는 19일 간의 여정과 감상을 일기 형식으로 꼼꼼하게 기록한 글이다. 원문은 한자로만 6,500자가 될 정도로 길다. 오원은 금강산에 남아 있는 아버지 오진주(吳晋周, 1680~?), 외조부 김창협(金昌協, 1651~1708) 등 집안 어른들의 흔적을 보며 감상에 젖기도 하고, 개심대(開心臺) ‧ 헐성루(歇惺樓) ‧ 산영루(山映樓) ‧ 진주담(眞珠潭) 등 금강의 절경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였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동경의 대상을 직접 경험한 흥분과 즐거움이 글 곳곳에서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오원은 그 즐겁고 긴 여행의 끝을 “ ‘나는 내 집이 좋아라.[吾愛吾廬]’라는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이로다.”라는 말로 맺는다.

 

   공감을 많이 얻는 글귀는 오랫동안 회자된다. ‘애오려(愛吾廬)’는 도연명(陶淵明)이 「독산해경(讀山海經)」 시에서 ‘새들도 깃들 곳 있어 좋겠지만, 나 역시 내 움막집 사랑한다오.[衆鳥欣有托 吾亦愛吾廬]’라고 쓴 이후로 많은 문인들이 흔하게 빌려 쓰는 표현이 되었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 같은 이는 아예 자신의 고향 집에 ‘애오려’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할 정도였다. 문인마다 경우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애오려’는 자신이 처한 상황, 공간, 자의식 등을 설명할 때 유용한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오원이 긴 여행의 끝에 도연명의 글귀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모든 유산기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 끝은 유람의 동반자나 유람의 일정을 적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자신이 며칠간 유람을 했는지, 다닌 거리는 얼마나 길었는지, 여정에 함께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직접 본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등을 말미에 적어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20여일의 금강산 여정을 마친 오원은 일정, 동행, 감상 등의 말은 일절 없이 ‘나는 내 집이 좋아라.’라는 말을 툭 던지는 것으로 여행을 갈무리한다.

 

   먼 길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을 떠올려본다. 착륙 직전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인천공항의 모습, 길게 뻗은 고속도로 저 끝으로 희미하게 보이다가 차츰 가까워지는 톨게이트의 모습,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 그 감정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익숙한 장소들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제아무리 즐겁고 신나는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누구나 일상(日常)을 그리워하고 일상에서 안식을 찾기 때문인 듯하다. 수많은 이들이 평생 소원으로 손꼽았던 금강산 구경을 마치고 돌아온 오원이 자신의 별장인 동정(東亭)에 편히 앉아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집이 좋아라!’라고 읊은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未曾有)’의 역병(疫病)이 우리 일상을 잠식한 지도 벌써 몇 달이나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부재(不在)를 이야기하고 있는 요즘이다. 언제나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들, 발걸음을 옮겨 찾아가면 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늘 여전해서 당연하게만 여겼던 일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 별세계(別世界)를 구경하고도 일상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요즘 같은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여태껏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이 몇 배는 더 소중하게 느껴질 법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모두가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지금의 사태를 잠깐 동안의 여행으로 기억할 날이 왔으면 한다.

  

 

글쓴이백진우(白晋宇)
전주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