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7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조여일 | 입력 : 2017/01/09 [06:14]

                                                       신다

               

                                            남궁지혜

[2017 경향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작 - 남궁지혜 ‘신다’
 

그러니까, 그게 꼭 네 손처럼 보인다는 건 아닌데 사람 손같이 보이긴 해. 엄청 빠르게 앞다리살을 조지니까 그런 생각도 잠시지만, 난 정말 놀라. 듣고 있어, 신다? 네 손 같다는 말은 아니야. 발이라면 모를까. 넌 좀 통통한 편에다가 발톱도 이상하게 나잖아. 조금만 오므리면 고리에 걸려 처진 앞다리처럼 보여. 그렇다고 네가 족발 같다는 건 아니고. 신다? 

등을 보인 채 누워있던 신다가 대답 대신 모로 누웠다. 나는 신다의 축축한 팔뚝에 입을 맞춘 채로 가만히 창밖의 공장 기둥들을 쳐다봤다. 신다, 내가 너 때문에 일한다는 건 알고 있어? 신다는 또 대답이 없었다. 오늘부터 열대야라는 것을 뉴스로 본 뒤로 좀처럼 기분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는 모르잖아. 낮에 얼마나 더운지. 2시간 전에 이 두 마디를 한 게 전부였다. 난 그 이기적인 주둥아리에 먹던 김치를 쑤셔 넣고 싶었지만 정작 쑤셔 넣은 것은 축축한 살덩이뿐이었다.

신다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일어났다. 늘어난 살집들은 동물원에서 나는 냄새를 풍겼다. 신다는 개처럼 침대를 가로지르고 내려가더니 선풍기 앞에 누웠다. 아, 차가워서 좋아. 신다는 닫혀있던 입을 그제야 열고는 나를 쳐다봤다. 날 바라보는 눈이 간만에 뚜렷했다. 평소의 무기력하고 맹하기만 했던 그런 눈이 아니었다. 

“교육원 보내줘” 

나는 손을 뻗어 스탠드 쪽에 올려두었던 손톱깎이를 가져왔다. 날이 선 집게로 엄지 밑 부분의 공처럼 난 누런 굳은살을 잘랐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성가신 것들을 다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다는 그런 날 가만히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뭘 배우고 싶어서 그러는데?” 

 

나는 신다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정신 좀 차리라고 하고 싶었다. 넌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면서 이럴 순 없지 않으냐고 소리 지르며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신다는 정말 돼지처럼 쿠에엥 따위의 소리를 지르며 굴러갈 것도 같았다. 그건 그거대로 웃기겠지. 나는 실실대며 계속해서 굳은살들을 정교하게 오렸다. 빳빳한 누런 살들이 이불 위로 떨어지는 동안 신다의 대답은 또 느려지기 시작했다. 한 번 대답이 나오는 것도 어쩜 돼지같이 느리지. 모든 게 싫증이 났다.

“문장” 

타이머를 해놓은 선풍기가 다 꺼질 때 즈음 신다가 대답했다. 회전을 멈춘 선풍기의 날들이 제자리를 찾기도 전에 신다는 1시간으로 타이머를 다시 맞추곤 나를 올려다보았다. 전에 시도 때도 없이 자기만 해대는 신다에게 전기세가 아까우니 꼭 선풍기에 타이머를 맞춰놓으라고 했었다. 그 뒤부터 한번도 빠짐없이 타이머를 맞춘다. 그래서 여름에는 타이머가 돌아가는 소리가 시계 초바늘 소리보다 크다. 어쨌든 터무니없는 신다의 말에 대충 딴청을 피우며 중얼거렸다. 아, 열대야라고 했었나. 하루의 반을 냉장고 같은 공장 안에서 보내는 내가 그런 거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이불 위에 떨어진 내 굳은살들을 하나씩 주워 담으며 물었다. 

“왜, 몽골이야기라도 쓰고 싶어?” 

“몽골 아니고 내몽골이라니까” 

“그래봤자 탈북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면서” 

“다른 이야기도 알아” 

왼손에 담은 딱딱한 살점들을 버리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 몸짓마다 신다의 시선이 움직였다. 펑퍼짐한 엉덩이를 괜히 발로 한 번 차곤 냉장고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손을 털었다. 느긋하게 냉장고에서 물통까지 꺼내 목을 축이곤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었다. 신다는 밑에 나는 위에. 원래부터 그 자리가 자기 잠자리인 것처럼 신다의 얼굴은 편안해보였다. 당분간은 침대 위로 올라올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적어도 열대야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침대에 누워 다시 창밖을 보며 신다를 등졌다. 신다가 따지듯이 물었다. 교육원에 보내줄 수 있냐구. 장학금도 있댔어. 가만있어도 땀이 흐르는 열대야였지만 난 이불을 가슴께까지 올리고 몸을 말았다. 몇 시간 후면 다시 공장으로 나가 돼지를 해체시켜야 했다. 굳은살이 배긴 내 손에 철장갑도 두르고 칼로 돼지의 앞다리와 몸통을 잘라야 했다. 나의 돼지년, 신다가 좋아하는 항정살과 삼겹살도 모두 내 손에서 구분돼야 비로소 상품이 되어 출고가 되는 거다. 하루 7시간을 꼬박 서서 칼질만 해대다 보면 이게 내 손인지 저게 족발인지 옆 사람이 돼지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종종 온다. 그래서 처음에는 옆 동료를 몇 번 칼로 찌르기도 했다. 지금이야 경력이 10년을 넘어서는 만큼 그런 아마추어적인 실수는 하지 않지만, 어린 이십대 친구들이 발골사가 되겠다고 칼질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내 칼에 찔린 채로 손질을 멈추지 않던 그 친구가 기억난다. 당시 나를 황당하게 보면서 칼로 갈비뼈를 쳐대며 작은 살점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다. 

너 칼 맞았어. 알고는 있는 거야? 

하얀 소독복의 팔뚝 부분이 온통 빨갛게 될 때까지 나는 계속 그렇게 웃었고 그 친구는 갈비뼈를 마저 분리시키고 공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가끔씩 그 친구가 어디서 또 누구를 위해 돼지를 자르고 갈비뼈를 쳐댈지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늘어지도록 잠을 자며 밥을 축내는 저 돼지가 뭐라고, 나는 이토록 신다 너를 버릴 수 없는 건지 모르겠다.

* 

우리가 만난 건 재작년 2월이다. 나는 당시에도 발골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공장에 나가 다섯 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게 전부인 일과였다. 일탈이라면 가끔 친구들과 안마방을 가는 정도. 먹자골목 뒷길로 좀 더 가다보면 별의별 안마방이 다 있다. 신다는 생긴 지 얼마 안된 파란 간판 안마방의 카운터를 보는 아이였다. 당시만 해도 신다는 제법 마른 체형이었다. 적어도 늘어진 티셔츠를 입을 때마다 쇄골이 보이긴 했으니까. 까무잡잡한 피부와 쌍꺼풀 없는 눈매는 초면부터 사나운 인상이어서 친구들은 면상이 재수 없다고 뒤에서 말했다. 나는 반대로 그 눈매가 마음에 들어서 신다와 섹스하는 장면들을 상상하며 카운터 쪽으로 자주 웃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신다는 그게 전부였다. 카운터를 벗어나지도 않았고 번호가 붙어있는 몇몇의 방에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몇 번을 눈여겨본 뒤에서야 신다는 카운터 뒤 다락방에서 자거나 먹고 싸는 계집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고기에 환장하는 년이라는 것도. 나는 신다에게 돈을 주겠다 했다. 먹고 싶은 것도 먹게 해준다고 했다. 그러니 같이 살자고, 나랑 같이 가자고 말했다. 신다는 북한 억양으로 항정살은 비싼데 그것도 네가 사줄 거냐고 물었다. 항정살이 뭐야. 돼지고기라면 다 줄 수 있어. 발골사가 뭔지 알아? 네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그거 다 내가 손보는 거야, 등갈비도 족발도 삼겹살도 가브리살도 항정살도 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고 신다는 일주일 뒤 안마방을 관두고 지금의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린 항정살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는 신다의 탈북 이야기도 있었다.

총 네 번의 탈북을 했다는데, 첫 번째 탈북에서는 엄마가 죽고 두 번째 탈북에선 아빠가 자기를 두고 도망갔다고 했다. 세 번째 탈북에서는 압록강을 건너다 걸려서 총대로 죽지 않을 정도로 맞고 이송됐었는데 그날의 후유증으로 신다는 다리가 짝짝이다. 요즘도 가끔씩 그 종간나 새끼들이 때리는 꿈을 꿨다며 나를 깨운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는 그 씨괄 같은 새끼, 씹 같은 새끼, 또 무슨 새끼 거린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신다의 손을 잡고 넌 이렇게 살아있으니 다행이지? 나 없으면 넌 어떻게 고기를 먹고 이렇게 뜨신 곳에 잠도 자냐, 라고 말한다. 그러면 신다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눈을 감고 나는 그런 신다를 보며 모처럼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가끔씩 내가 아니면 안될 것처럼 구는 신다의 미련한 얼굴을 볼 때면 쾌감이 발끝에서부터 저려온다. 꼭 사정하기 전의 감각과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신다의 잠든 몸을 붙들고 하체를 비비기도 했다. 신다는 이런 면에서는 여우 같은 계집임이 틀림없다. 

탈북을 성공한 네 번째 이야기는 그냥 별거 없었다. 3년 뒤에 아빠가 보낸 브로커가 찾아와서 군인에게 돈을 주곤 국경을 넘었다고 했다. 중국으로 가서 며칠 있다가 내몽골로 다시 넘어간 신다는 철조망을 넘어 어두운 새벽을 달렸다고 했다. 북두칠성을 보고 가란 말에 이틀을 꼬박 달리며 하늘만 봤는데 밤만 되면 추워서 견딜 수 없었고 낮에는 더워서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한 원주민이 사는 집을 발견하고 일주일 뒤에 봉고차를 타고 한국 대사관으로 갔고 그렇게 한국에 왔다고 했다. 아빠는 만났어? 당시 신다는 쌈을 싸면서 대답했다. 아니, 한번도. 티비에서도 몇 번이나 보던 탈북이야기는 지긋지긋했으므로 나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술잔을 채웠다. 

그날 먹은 고기가 죽여줬지. 언젠가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신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집에 처음 온 날? 맞아, 죽여줬지. 죽여줬는데 기억이 안 나. 내가 너한테 어디까지 말했더라. 신다는 한참이나 그 말을 중얼거리다가 다시 사막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이나 해봤어? 광활한 사막을 별 하나만 보고 달린다는 게 어떤 건지. 생각이나 해봤냐구. 아무도 없어. 너 혼자 그 모래언덕을 넘고 또 넘는 거야. 사실 몰라.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누군가가 말은 해줬지만 아무리 달려도 보이지 않으니까, 달리기만 하는 거야. 그래서 무섭고 두려운데 그만큼 아름다운 거지. 황홀하기도 하고. 좌우를 바라봐도 지평선만 보이는 순간들이,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내가 완전히 그곳을 벗어났다는 걸 실감하게 하거든. 

신다는 후에도 그런 말들을 술주정처럼 반복했다. 그런 때의 신다는 드물게 말이 빨라지거나 많아져서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난 그런 신다가 낯설어 싫었다. 사막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되는지. 나는 신다의 느릿하고 나태한 모습을 볼 때마다 발로 차버리고 싶긴 했지만 막상 다른 모습을 보니 불쾌하기만 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짜증이 나, 그 사막에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이냐고 물었다. 신다가 사막, 사막거리며 벙긋대던 입을 닫았다. 말없이 그냥 날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한마디를 꺼냈다. 

내가 너한테 어디까지 말했더라. 

* 

돼지는 버릴 게 없어. 비곗살도 사료용으로 들어가거든. 우리 공장으로 들어온 돼지들은 죽는 게 아니야. 사라지는 거지. 내가 너보고 가끔 돼지 같은 년이라고 부르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칭찬으로 여겨도 좋아. 사람들은 대부분 다 쓸모없잖아. 넌 그런 사람들과 달라. 

신다가 스팸을 구우며 웃었다. 왜, 섹스 해줘서? 열대야 이후로 하루 종일 팬티바람으로 다니는 신다는 다 구운 스팸을 김치와 함께 가져와 밥상에 올렸다. 내가 널 언제 그런 의미로만 뒀냐. 밥이나 먹어. 신다가 잠자코 스팸을 씹었다. 김치를 뒤적거렸다. 사둔 콘돔이 몇 개 있더라. 언제나 그렇듯 단조로운 식사 시간이었다. 

내가 공장에서 일하고 오면 신다는 양말을 벗겨주고 시원한 물을 건네준다. 씻고 나와 침대에 누우면 몇 시간이나 서 있던 내 다리를 한참이나 주물러주다가 7시마다 나오는 연속극을 틀고 저녁준비를 한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끝나면 새벽 한 시까지 침대에 누워 채널만 돌리다가 서로 몸을 핥으며 섹스를 하든지, 잠을 잔다. 오늘도 그렇게 단조로워야 하는데 신다가 저번처럼 뻔스레 교육원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안 보내줘? 곧 원서 마감이래. 나는 신다의 엉덩이를 때렸다.

“정신머리 나간 년” 

“한 학기만 다닐 거야. 첫 학기는 장학금 줘서 더 싸대” 

“얼만데?” 

“이백 삼십” 

“내가 그 돈을 너한테 왜 줘” 

줄만 하잖아. 벌게진 엉덩이를 치켜들고 선풍기 앞으로 내려간 신다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비스듬히 누워 이백삼십만원을 중얼대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신다는 내게 돈이라도 맡겨둔 사람처럼 당당하고 뻔뻔한 얼굴이었다. 별다른 취미생활도 없이 안마방에 돈 쓰는 게 다였던 나에게 그 정도면 없는 돈도 아니었다. 내가 거기 보내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건데? 신다가 웃었다. 나한테 가져갈 게 있어? 담배를 물고 신다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다. 넌 뭣도 없잖아. 창을 열어도 눅눅한 방안 공기는 갑갑했다. 담배는 피우나마나였다. 재떨이에 담배를 지지고 얇은 이불을 덮자, 신다가 선풍기 방향을 내 쪽으로 돌리더니 침대 위로 올라와 옆구리에 얼굴을 묻었다. 나 비밀은 있어. 그거 말해줄까? 허리가 뜨거웠다. 창밖의 공장 기둥들을 가만 보니 오늘 따라 유독 길어 보이고 많아 보이는 것이 꼭 축사에서 보았던 창살 같았다. 낡고 더럽고 꺼먼 창살. 

“말해 주냐고” 

“말해봐, 뭔데?” 

신다가 몸을 좀 더 위로 올려 이번엔 내 팔을 벴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선 눈이 반달처럼 접혀진 것이 꼭 신나는 이야기라도 할 것 같았다. 

“알잖아. 나 탈북 할 때 내몽골 간 거. 그때 원주민들이 내 말을 못 알아먹어서 말에 날 태우고 사막 한가운데 있는 군인초소로 데려갔었어. 거기 가니까 나와 똑같은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한 방에 수두룩하게 있더라고. 일주일 있으면 우리를 데리러 대사관에서 온다고 조용히 좀 있으라고 했는데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안 시끄러운 적이 없었어” 

왜 그런 줄 알아? 신다가 잔뜩 기대하란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사막이야기를 해댈 때는 언제고 이제야 왜 한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는지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평소보다 더 들떠 보이는 신다의 말에 흐름을 끊을 순 없었다. 왜 그런데? 신다는 내 귀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신음처럼 작고 은밀했다.

“여자 때문에, 그 빌어먹을 여자들 때문에” 

귀가 습기 찬 것처럼 축축해져도 신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군인들이 섹스를 하려고 여자들을 매일 데려가려고 했거든. 왜 너랑 맨날 하는 그 짓 말이야. 그거 하려고 낮이고 밤이고 안 가리고 여자들을 데려가려고 그러는데, 남자들이 가만 있겠냐구. 말이 통하지도 않는 사람들끼리 목청만 크게 싸우는데 난 정말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어. 그러다가 삼일째 되는 날에 누가 날 깨우는 거야. 항상 제일 큰 목소리로 싸우던 아저씨였는데, 그 아저씨가 나보고 신다야, 신다야 부르면서 깨웠어. 사실 뭘 할지 알았는데, 그냥 따라갔어. 사막을 그렇게 뛰었던 이유를 잃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어떻게든 한국에 가고 싶었으니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말을 안 들으면 군인들이 금방이라도 날 총대로 때리거나 북에 넘겨버릴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아저씨 손잡고 군인들이 있는 방으로 갔지. 그리고 그 짓을 했어. 쉬지도 않고 했어. 마르고 작은 몸으로 세 명까지 하고 나와 힘이 빠져 누워만 있는데 딱 저런 구석에서 아저씨 부인이 애 젖을 먹이고 있는 거 있지? 그걸 보고 나는 그냥 울었어” 

왜 억울해서? 신다가 환하게 웃었다. 아니, 내가 왜? 귀를 베개에 비볐다. 신다의 건조한 입술이 유난히 붉게 보였다.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냥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나 덕분에 그 아인 창녀인 엄마를 안 둬서 좋은 거고 나는 한국에 무사히 가니 좋은 거고. 베개를 아무리 문대도 귀가 가려웠다. 왜 얘는 말을 해도 꼭 귀에다가 해서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인상을 찌푸렸더니 신다의 얼굴이 금세 이상해졌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어정쩡한 표정. 내가 더러워? 신다가 입술을 삐죽이며 물었다. 아무리 닦아내도 간지러운 귀는 나아지지 않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면 내가 불쌍해? 신다의 계속되는 물음에 짜증이 났다. 어깨를 밀었다. 침대 밖으로 밀려난 신다가 나를 원망스레 쳐다봤다. 너는 모르잖아. 생각이나 해봤어? 숨이 죽어 납작해진 베개를 던졌다. 뭘 생각해봐? 그래서 네가 지금 잘했다는 거야? 베개를 맞고도 전보다 더 의연해진 얼굴로 고개를 쳐든 신다가 소리를 질렀다. 잘했냐니, 이 쌍간나새끼야. 나는 아니야. 안 그래. 내가 어떻게 사막을 달렸는데 그걸 놓치니? 안 그러니? 니 말해봐라. 다리 벌리는 게 뭐가 대수라고 그러냐 말야. 베개가 다시 날아왔다. 닥쳐라 안 닥쳐? 신다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베개로 신다의 면상을 후려치고 어깨를 밀고 방 밖으로 내쫓았다. 신다가 방문 밖에서 씩씩댔다. 여전히 간지러운 귀는 이젠 정말 역겨울 지경이었다. 귀를 긁다가 침대 위로 올라가 처음처럼 이불을 덮고 선풍기 바람을 쐤다. 미친년이 뭘 자꾸 생각해 봤냐 그래. 사람 기분 더럽게. 눈을 감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신다는 그날 새벽 내내 부엌에 쪼그려 잤다. 아침에 그 꼴을 보고 어이없어하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보내줄 거지? 눈 밑에서 턱까지 길게 난 희미한 자국을 살펴보는 동안 신다가 다시 말했다. 교육원, 보내줄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개를 새로 사야겠다. 

* 

공장 하나 더 들어온대. 자네 동네 말이야. 형편없는 스팸도시락을 반쯤 비워갈 때 즈음 장씨가 말했다. 식은 밥은 지들끼리 뭉쳐져서 떡처럼 씹혔고 차가운 스팸은 짜기만 했다. 공장부지가 다 그렇죠, 뭐. 나는 대충 그렇게 대답하며 뚜껑을 덮었다. 케첩이라도 넣어주지. 하여간 지 입에 들어가는 것만 생각하는 년. 제대로 된 점심을 먹은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신다가 점점 괘씸해졌다. 이번에 이사 좀 하는 게 어때? 데리고 사는 또래 여자 있다면서. 양가 부모님한테 손이라도 벌려서 이사 가. 누가 요즘에 공장공기 마시며 사냐구. 장씨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휴게실에 있는 다른 아줌마들이 대놓고 눈치를 주고 째려 봐도 장씨는 개의치 않았다. 걔 탈북한 애예요. 부모는 무슨.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씨가 얼굴을 들이댔다. 뭐야. 네가 거두고 키우는 거야? 공부까지 시켜 달래서 저번주엔 교육원도 보냈는데요. 장씨가 거북한 웃음소리를 냈다. 당돌한 년이네. 밤일 잘하나보지? 나는 문득 어젯밤 끝나지 않는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신다가 기억났다. 그냥 뭐 그렇죠. 근데 아저씨. 오늘 최고 기온이 몇이래요? 장씨가 헛웃음을 쳤다. 

“그게 왜 궁금해?” 

“저도 궁금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애가 너무 더워하잖아요. 뭔 놈의 여름이 이렇게 덥죠? 제가 밖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구. 냉장고에서 칼질만 하는 놈이 뭘 알겠냐구요. 근데 신다가 덥대요. 지 등록금 나가는 거, 그 돈으로 차라리 에어컨이나 사달라고 하면 몰라. 안 그래요, 아저씨?”

장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려, 그냥.” 

장씨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콧등을 쓸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타임으로 들어가서 다시 나는 돼지를 해체시켰다. 반으로 갈라져 고리에 육중하게 걸려있는 돼지들은 차갑고 축축했으며 역겨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늘 잠시일 뿐, 난 도마 위 돼지를 내 몸처럼 쓰다듬으며 어떤 때는 집 나간 엄마를 떠올리고 또 어떤 때는 굳은살 박인 손으로 홀로 수음을 하던 나를 떠올린다. 신다가 온 이후부터는 그녀의 머리, 어깨, 허벅지를 떠올리고, 총대를 휘두르던 군인의 손, 사막을 달리던 신다의 다리, 내몽골 한가운데에서 사정하는 그날 세 명의 쾌감, 또 뭐가 있더라. 또, 또. 

아무튼 그러한 감각들을 손에 단 채로 오늘도 돼지의 앞다리를 먼저 조지고 그 다음 몸통을 도려낸다. 그리고 갈비를 떼어내서 칼등으로 치면 본을 뜬 것처럼 살점이 깨끗하게 발라지는데 처음에는 그게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주머니가 있다면 그 갈빗살을 훔쳐서 집에 가져가고 싶었다. 하지만 늘 상상에만 그쳤다. 통통한 갈빗살은 상품이 되는 순간 내 것일 수가 없다. 내가 도려낸 것들인데 내 것이 아니라니.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일한 지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거 하나 공짜로 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공장 앞에서 회식이랍시고 가끔씩 고기를 구울 때도 그렇다. 비곗살 많은 삼겹살들만 내와서는 먹는 내내 속이 부대껴서 참을 수가 없다. 아니, 사먹으라면 사먹을 수야 있지.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부족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다들 인정(人情)들이 없다 이거다. 이미 상품화된 진공팩 하나 못 뜯어서 비급이나 내오는 꼴이라니.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팔이, 지금 팔이” 

언제 한 번은 그 고기 좀 직원할인가로 팔 수 없냐고 물었는데 장씨를 포함한 다른 직원들이 별 미친놈 다 보겠다며 웃었다. 염병하네, 직원할인가를 어디서 찾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종일 얼굴이 화끈대서 참을 수가 없었다. 사대보험은 해주면서 그건 왜 못해준데. 

“야! 괜찮아? 그만해. 너 지금 칼 맞았어. 알고는 있는 거야?” 

그러면 내가 잘라낸 그 많던 돼지의 부위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내가 먹기도 전에 그렇게 어디로 다들 빠지냐, 이 말이다. 

아, 팔뚝이 뜨겁다. 

* 

너무 더웠다. 나는 개처럼 헥헥거렸다. 후덥지근한 공기는 집에 와서도 똑같았다. 병원에서 꿰맨 팔뚝은 마취가 풀릴수록 화끈거렸다. 신다? 신다가 보이지 않았다. 교육원에 다닌 이후에도 내가 퇴근하기 전에는 먼저 집에 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한적한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신다? 나는 다시 한번 신다를 불렀다. 하지만 화장실에도 신다는 없었고 방에도 신다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이제 겨우 2시가 돼가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 선풍기를 켰다. 열린 창문으로는 공사소리가 크게 들렸다. 평소라면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소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를 괴롭혔다. 시끄럽고 덥고 짜증났다. 옷을 벗어던지고 속옷차림으로 전에 신다가 누웠던 대로 선풍기 앞에 누웠다. 욱신대는 팔뚝은 조금만 움직여도 바닥과 맞닿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욕을 했다. 칼로 날 찌른 주제에 지가 더 아픈 표정으로 손을 떨던 그 새끼도 짜증났고 이 자리에 없는 신다에게도 화가 났다. 공부를 한다는 말이지. 내가 이렇게 한낮에 냉장고 같은 공장에서 돼지 갈비뼈나 쳐대는 동안 너는 고작 글이나 쓰며 있다 이 말이지. 발끝에 걸리는 옷가지를 걷어찼다. 상스러운 욕이 입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기분은 조금씩 나아졌다.

생각해보면 칼에 맞는 것도 별거 아니었다. 순식간에 훅 들어와서 꽂히는데 아프지도 않았다. 피가 날수록 오히려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날 칼로 찌른 새끼는 뭐가 그렇게 겁이 났는지 어쩔 줄 몰라 했다. 공장 사람들이 나서서 괜찮다고 말했다. 칼에 찔린 건 나인데 사람들은 그 새끼에게 괜찮다며 등을 토닥였다. 처음엔 다 그래. 그렇게 배우는 거지, 뭐. 도마 위에 장갑을 벗어 던졌다. 축축한 왼팔로 나가는 내 등 뒤에서는 얼른 다시 시작이나 하라며 한씨가 소리쳤다. 그 말은 꼭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언제든지 있다는 것처럼 들려서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서 공장을 빼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참을 수 없이 덥고 습한 공기는 선풍기로도 감당이 안됐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닥은 내가 누운 자리 그대로 축축해져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무작정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팔뚝은 이제 완전히 마취가 풀려 뜨겁고 따가웠다. 괴성이 절로 나왔다. 내가 지르고 싶어서 지르는 게 아니었다. 빌어먹을 더위도 그렇고 신다가 없는 지금도 그렇고 뭣 하나 내 성에 차는 게 없었다. 소리를 더 크게 질렀다. 그래도 밖에서 들리는 드릴소리는 묻히지도 않았고 더위는 사라지지도 않았고 내 팔뚝의 열기가 나아지지도 않았다. 대충 몸을 닦고 나가서 불에 물을 올렸다. 라면이나 끓여먹고 티비나 보며 신다를 기다려야겠다. 

너저분한 방에서 받침대로 쓸 잡지 같은 것을 찾으려고 현관 앞에 있는 재활용더미를 뒤졌다. 고지서나 광고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중에서도 대출 광고지가 많았는데 유독 이 동네는 음식점 광고보다 대출 광고가 훨씬 많이 날아오는 편이었다. 나는 현관문에 붙어있거나 문틈에 끼어있는 대출 광고지를 볼 때마다 이 세상은 꼭 나를 무너지게 만들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때마다 나는 돼지를 먹고살 정도로 넉넉하다고, 그러니 작작 좀 하라고 누군가의 뺨이라도 때리며 말하고 싶었다. 저번에는 진짜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전단지 알바생을 현관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신다는 그런 내게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진지하게 물었었다. 

교대 할래? 오면 때려줄게. 뺨만 때리면 되는 거지? 

그런 때의 신다는 사랑스러운 여자임이 틀림없다. 

끓는 라면 소리에 광고지 몇 장을 깔고 냄비를 내려놓았다. 마트에서 사둔 반포기 김치도 꺼냈다. 내가 끓인 라면은 오랜만이었다. 원래 이런 건 다 신다가 하는 거다. 먹고 재워주니 이런 것쯤은 걔가 하는 게 맞다. 어디쯤일까. 라면이 맛없다. 왜 일찍 안 다녀서 팔뚝도 아픈 사람을 라면 끓이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역에서 이 근처로 오는 버스는 93번밖에 없으니 아마 지금쯤 그걸 타고 있을 텐데. 걔는 버스를 타면서도 생각이란 걸 할까. 뭐 어쩌면 오늘 배운 것들을 곱씹을 수도 있겠다. 아니, 아니다. 걔는 그냥 허울 좋게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저녁을 뭘 먹을지에 대해서나 생각하겠지. 미련하고 멍청하기만 해선. 어쩌면 버스가 폭발할지도 모르고 다른 차가 돌진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저는 깔릴 것인지 튕겨나갈 것인지, 그런 사소한 근심이라도 달고 살 줄도 모를 것이다. 세상 편한 줄만 아는 그런 여자. 

아, 하지만 정말 신다가 탄 버스가 폭발당하거나 다른 차가 돌진하면? 신다가 영영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럼 나는? 교육원에 가서 일단 환불이 되는지부터 문의해봐야 하나. 아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신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혼자 고기를 먹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고 그럼 나는 이 집에 혼자 남겨져 저 선풍기 앞에 누워있는 누군가를 위해 발을 피할 이유도 없어진다. 내 다리는 누가 주물러주고 차가운 물은 누가 건네주나. 아니,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신다를 왜 데려왔지. 그 파란 간판 밑에서 일광욕처럼 조명만 쬐던 년을 왜 데려왔지. 가늘고 작은 눈을 한 주제에 항정살 같은 비싼 고기를 먹을 줄만 아는 그런 여자를 왜 데려왔던가. 뜨거운 라면이 식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차가운 돼지를 만지고 온 내 손을 유일하게 쓰다듬을 수 있는 여자는 누군지, 또 나와 같이 잠을 자줄 여자는 누구였는지도. 

깨끗하게 비운 냄비를 그대로 두고 병원에서 준 약을 먹었다. 내 꼴을 보면 신다는 뭐라고 할까. 이기적인 애니까 일은 나갈 수 있냐고 물을 게 뻔했다. 93번의 배차 간격이 어떻게 되더라. 평소 내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신다는 나타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아무렇게 널브러진 원고지들을 발로 쓸었다. 신다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방 곳곳에 자신의 원고를 버리듯이 놨는데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원고지를 발로 차버릴 때마다 그냥 굼뜨게 일어나서 주울 뿐이었다. 이게 다 교육원 때문이다. 그게 뭐라고 신다는 펜을 들고 새벽 내내 앓도록 글을 쓰고 자다가도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무언갈 적는단 말인가.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널브러진 원고지들을 모아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퍼즐처럼 순서를 맞췄다. 단순히 뭔 내용을 갖고 썼는지만 알아내서 신다를 놀릴 생각이었는데 읽다보니 머리만 아팠다. 삼류 같은 내용이나 다름없었다. 시작부터가 골 때렸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돼지가 된 여자가 당황한 나머지 거리로 나가 날뛰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주민의 신고로 탈주한 돼지 취급받곤 한 공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좁은 그곳에서 사료도 제대로 못 먹고 굶어가다가 이대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또다시 탈주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주인에게 발견되어 죽을 고비를 맞는다. 채찍질을 당하며 자신은 왜 돼지가 되었는가를 몇 번이고 생각하는데 별 다른 정의는 딱히 내려지지 않는다. 그냥 여자는 돼지였나 보다. 아니, 그럼 애초에 왜 여자는 돼지가 되어버린 것인가. 돼지면 돼지인 거지. 아무튼 그 탈주한 돼지는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남자는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와 돼지를 열심히 살찌운다. 돼지는 자신의 살집이 전보다 더 두툼하다는 것을 느끼며 쿠에엥거린다. 남자는 그 소리를 듣고 놀라 뒷다리 부분을 때린다. 닥쳐, 안 다쳐? 쿠에엥. 뭐 이런 대화들. 

원고지 뭉치를 재활용더미 위에 던졌다. 때마침 신다도 들어왔다. 나를 보고 물었다. 뭐하는 거야? 칼 맞았어.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뭐? 왜 던지냐구. 칼 맞았다니까. 신다가 원고지를 다시 들었다. 내거 읽었어? 나는 끓는 가래를 싱크대에 뱉었다. 요즘엔 그게 소설이라고 쓰냐. 신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별 병신 같은 소설이 다 있다고 감상평을 말했다. 

그날 새벽 내내 신다는 방에 들어오지 않고 부엌에서 글을 썼다.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펜으로 뭔가를 적었다. 뭔가를 그렇게 하염없이 적기만 했다. 그날 새벽 나는 처음으로 열대야를 실감했다. 신다의 말대로 더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 

신다는 그날 이후로 도시락에 스팸을 더 이상 넣지 않았다. 대신 김치볶음밥이나 김밥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공장 사람들은 내 팔뚝의 안부를 묻기보다 새로 들어오는 공장이 어떤 공장인지에 대해 물어봤다. 소문으로는 모 대기업의 반도체 공장이라는 말도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완공까지는 1년이나 남았다는데 무슨 공장 하나를 완공하는 데도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장씨의 말대로 이사를 가는 게 낫겠다. 낮에 들리는 소음은 도저히 들을 게 못 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장들도 지긋지긋하다. 조만간 부동산이나 들러 시세나 알아봐야겠다. 

아침에 신다가 곧 소설이 완성된다고 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그럼 끝나는 날 고기를 먹자고 했다. 나름 축하한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신다가 웃었다. 아, 싫어. 왜 싫어? 고기 먹자니까. 신다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팬티만 빨았다. 그 꼴을 보자니 쪼그려 앉은 폼이 궁상맞아 보여서 다가가서 엉덩이를 찼다. 신다는 그대로 빨간 타일 위에 넘어졌다. 너 어제 다리도 왜 안 주물러줬어? 아무렇지 않게 머리칼에 묻은 하얀 거품을 닦아내고 다시 쪼그려 앉았다. 축축한 팬티를 쥐었다. 내 말 무시하지 말고 말해봐. 고기는 왜 먹기 싫고 다리는 왜 안 주물러 주고 그러냐니까. 신다가 빨랫비누로 팬티를 문대면서 거품을 냈다. 화가 났다. 사람을 앞에 두고 이렇게 무시를 할 수가 있나? 출근이고 뭐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쩌면 이게 다 교육원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 아니다. 소설 때문이다. 그 빌어먹을 소설 때문이다. 난 곧장 욕실을 나가서 원고지들을 찾았다. 방안에 그렇게 돌아다닐 때는 언제고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글 같지도 않은 걸 써대는 주제에 처먹으라는 대로 처먹지도 않고. 내가 알던 신다가 아니었다. 방 안을 뒤지면서 종이 쪼가리를 찾았다. 이거야? 이거야? 나는 종이라면 보이는 대로 다 들어서 신다에게 물었다. 네가 쓰던 거 어디 있어. 그제야 붉어진 얼굴로 욕실을 뛰어나온 신다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기묘했다. 어지러웠다. 신다의 어깨를 밀었다. 떨어져 나간 신다의 허벅지를 찼다. 참을 수 없었다. 발바닥에 맞닿았던 허벅지 살들은 두껍고 붉었고 또, 또 부드러웠다. 유난히 긴 몽고반점은 공장에서 보던 낙인처럼 선명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찼다. 신다가 끅끅댔다. 김이 샜다. 진짜 쿠에엥 소리라도 날 줄 알았다. 글 어디 있냐니까. 몰라. 왜 몰라. 쓰다가 말았어, 버렸어. 나는 기가 찼다. 곧 완성된다며. 신다가 모르쇠로 몸을 웅크렸다. 아파? 눈을 감은 신다가 손등 위에 입술을 맞댄 채로 한참이나 가만있다가 중얼댔다. 내가 뭐랬어. 이럴 줄 알았어.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신다가 완전히 몸을 말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확인했다.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지각이었다. 날 대신할 누군가는 많았다.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구겨 신었다. 신다가 고개를 들었다. 웃고 있었다. 

그거 같다구. 꼭 여기가. 

현관문이 닫혔다. 93번을 타기 위해 달렸다 

* 

일이 끝나자마자 정육점으로 갔다. 오늘 저녁에 산 고기는 특별히 비싼 고기다. 신다가 좋아하는 항정살로만 샀다. 아침 일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정말 앞다리처럼 보여서 찼다고 하면 신다는 이해해 줄 것이다. 항상 돼지 같은 년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갈 것이다. 고기를 구워주며 이사를 가자고도 해야겠다. 에어컨도 옵션으로 달린 빌라로 알아보자고 하면 모든 건 잊고 금세 좋아할 것이다. 서둘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렸다. 달리면서 신다와 비슷한 여자를 본 것도 같았다. 그러나 통통한 계집이 어디 한둘인가. 신다와 같은 여자들은 많았다. 현관문 앞에 붙여진 광고지를 대충 떼어내며 웃었다. 사랑스럽던 신다의 모습들이 하나둘씩 생각났다. 이사를 가면 이런 광고지들도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 문을 여니 깜깜했다. 밤이라 그렇다 쳐도 깜깜했다. 신다? 불을 켰다. 훤히 열려 있는 욕실에는 젖은 팬티 하나가 있었다. 비누 냄새가 났다. 방에도 불을 켰다. 신다? 선풍기가 없었다. 신다의 물건을 찾으려고 서랍을 뒤졌다. 찾다보니 신다의 물건이 애초에 무엇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처음에 어떻게 왔었던가. 짐은 있었던가. 속옷은 어디에 두었고 옷들은 어떤 것이었던가. 잠시 침대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봤다. 내 방이었다. 변한 건 없었다. 없어진 건 선풍기 하나였다.

아니, 아니다. 없어진 건 선풍기 하나가 아니다. 

그래, 없어진 건 선풍기 하나가 아니다. 

아침에 너무 했나. 그렇다고 발로 차버리는 것은 정말 아니었나.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내가 잘못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잘못했나? 평소처럼 넘어갈 수 있는 것인데. 사막에서도 잘 버텨온 애가 발로 맞았다고 이 집을 나갔다는 게 말이 돼? 꽃뱀이 따로 없다. 그래봤자 사라진 건 선풍기 하나지만, 이건 도둑이랑 다를 게 없다. 얼마나 잘해줬는데 나한테 이러나. 일단 항정살부터 냉장고에 넣어둬야겠다. 아, 근데 93번에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면 어떡하지? 그래서 못 온 걸 수도 있다. 정말 버스가 폭발하거나 다른 차가 돌진해서 깔려있거나 어딘가에 튕겨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죽었을까? 살았다 해도 불구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일도 공장에 가서 돼지를 조져야 하는데 이렇게만 있다가는 하루가 다 간다. 간만에 산 비싼 고기도 그렇고. 일단 냉장고에 항정살을 넣자. 넣고 생각하자. 그게 맞다. 그게 순서다. 

그날 밤 나는 신다가 없는 열대야를 앓으며 이불 위에서 울었다. 신다는 개 같은 년이 따로 없다.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새벽은 더웠다. 신다가 어디서 뒈진 채로 영영 내 앞에 안 나타났으면 좋겠다. 이런 새벽은 지독하고 우울하고 괴롭기만 하다. 신다도, 선풍기도 없다. 축축한 이불을 다시 뒤집고 창문에 몸을 붙였다. 공장의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저 더럽고 역겨운 창살들은 더위를 모르고 빛나고 있었다. 애초에 사물이라는 건 감각이 있는 것들이 아니니 이런 더위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로 흥건한 얼굴을 창밖으로 내밀고 아침이 오길 바랐다. 공장이 되어야지. 그 안에 들어가 나오지 말아야지. 돼지들만큼 완벽한 것들은 없다. 내게 돈을 주는 것도 돼지고 돈을 쓰게 하는 것도 그 돼지다. 돼지들을 사랑해야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돼지를 만들어야지. 멍청한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신다도 그 병신도 그걸 몰라서 그렇게 뛰쳐나갔다. 또 누군가에게 궁상맞은 사막 이야기나 하며 어디선가 고기를 먹고 있을 게 뻔하다. 그 년이 우리 엄마와 다를 게 뭔가? 엄마도 누군가에게 다리나 벌리며 과정이라 여기고 있을까. 어느 사막을 달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엄마가 뛰쳐나간 그날의 사막에 왜 나는 데리고 나가지 않았을까. 아아. 나는 다시 더위에 잠겨 흐느꼈다. 내게도 달릴 사막이 있으면 얼마나 좋아. 나는 신다의 살내가 배긴 베개를 허벅지 사이로 비비며 울었다. 텁텁한 갈증이 날 더 괴롭게 했지만 어째서인지 일어날 힘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사막에 선풍기를 가져가서 뭘 하려고, 신다? 뒤늦게 든 생각에 몇 번이고 물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불의 감촉도 이젠 부드럽지 않았다. 까슬하고 따가웠다. 신다, 대답해봐. 이게 다 무슨 소용 있어. 하지만 신다는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이분 도체로 된 돼지들을 평소와 같이 칼로 가로지르며 목살을 자르고 삼겹살을 도려냈다. 칼날을 세우고 살결을 가를 때마다 신다의 끅끅대는 소리를 들었다. 족발 같다며 놀렸던 통통한 손등이 고리에 걸려 먹음직스럽게 흔들렸다. 나는 앞다리부터 도려내 작업대에 올렸다. 신다가 살살하라며 소리 질렀다. 나는 그런 걸 봐줄 여유가 없었다. 조금만 지체해도 육질이 달라져서 등급이 떨어진다. 이게 신다 다 널 위한 일이야. 그렇게 말하며 앞다리에 붙어있는 항정살을 떼어냈다. 신다의 뼈가 하얗게 드러났다. 그건 생각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었다. 먼저 다른 작업을 끝낸 장씨가 신다의 몸통으로 칼을 가져갔다. 손대지 말라고 소리 질렀다. 장씨가 미친놈이라고 헛웃음 쳤다. 나는 신다의 몸통을 작업대로 올려 갈비뼈를 발라냈다. 사막을 뛰던 년이라 그런지 지방층이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신다가 차갑고 축축한 몸으로 하얀 작업대 위에서 늘어졌다. 아, 차가워서 좋아. 신다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오늘의 열대야는 또 무슨 수로 견뎌야 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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