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조여일 | 입력 : 2017/01/06 [09:53]

 단편소설 당선작

                                             박스


                                            권제훈

박스였다. 여러 박스를 해체한 다음 다시 이어 붙여 더 크게 만든 것이었다. 박스로 만든 박스. 높이는 내 턱까지 닿았고, 넓이는 두세 사람이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모두 라면 박스였고, 아래부터 짜장범벅, 새우탕, 너구리 그리고 사리곰탕 순이었다.

짜장에 빠진 새우와 너구리 그리고 그 위를 덮치고 있는 곰이라니. 한 손엔 연어를, 또 다른 한 손엔 코카콜라를 들고서 해맑게 웃고 있는 곰이 떠올랐다. 곰이 너구리나 새우도 좋아하나. 즐겨 먹진 않더라도 배고프면 다 먹어 치우겠지. 위태로운 구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를 보완하듯 투명 테이프가 각자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영역을 침범해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어버리리라.

그런데 이걸 누가, 왜, 여기에.

학생회관엔 정말 오랜만에 들어와 보았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들어온 건 아니다. 여느 때처럼 도서관을 나와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학생회관 앞이었다. 자연스레 4층까지 발길이 향했다. 그리고 복도 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박스를 발견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닌데, 나는 박스의 존재가 별스럽게 느껴졌다. 매일같이 먹는 라면 박스를 이어 붙인 것뿐인데, 이해할 수 없는 예술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박스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아래에서 위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그때였다.

 


"뭐 하실 거예요?"

여자 목소리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저물어가는 해가 복도 반대편 창문을 통해 겨우 턱걸이를 하고 있을 뿐,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취업 상담?"

나는 다시 박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박스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분명히. 박스가 말을 하는 건 아닐 테고, 박스에 누군가 있다는 뜻이었다. 박스 안에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실 거 없어요."

당황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심지어 뒷걸음질을 쳤고, 하마터면 자빠질 뻔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박스를 구경한 것뿐인데, 노상 방뇨를 하다가 누군가에게 걸린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취업 상담이죠?"

내가 어리둥절한 태도를 보이자 여자가 말을 이었다.

"요즘은 대부분 취업 상담만 하거든요."

나는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너구리에서 곰으로, 다시 너구리로, 짜장으로, 새우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박스 안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툭, 툭, 툭, 여자가 손가락으로 박스를 퉁겼다. 박스 정면의 너구리와 새우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자그마한 글씨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메뉴 : 연애 상담, 취업 상담, 학업 상담, 인간관계 상담, 전생 여행, 오늘의 운세, 마음 그리기 그리고 잡다한 이야기들

일종의 점집인가. 학교 인근 지하철역 주변엔 점집들이 나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관상, 손금, 생년월일, 타로카드, 주사위 등으로 운세를 봐주는 점집들이었다. 점집들은 포장마차처럼 저녁만 되면 나타났다가 동이 트면 일제히 사라졌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이 드물듯 다들 아침엔 점집을 찾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침엔 그래도 살 만하다는 뜻이고, 그나마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둠이 세상을 뒤덮기 시작하면 근심걱정도 덩달아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점을 본 적은 없었지만, 점집 주변을 어슬렁거린 적은 많았다. 한번 봐 볼까.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돌아가기 일쑤였다. 친구들은 재미로 보는 건데 뭐 어때, 하며 묘한 분위기의 천막으로 자신 있게 들어가곤 했지만, 난 아니었다. 재미일지라도, 장난일지라도 듣기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다. 설령 나에게 유리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뿐일 테니까.

평소 같았으면 나는 그냥 돌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학생회관에, 그것도 라면 박스로 만든 점집에 나는 묘하게 끌렸다.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학생회관으로 자연스레 발길이 간 것, 그리고 우연히 박스로 만든 점집을 발견한 것, 모두 삶에 허덕이고 있는 가엾은 중생을 위해 하늘이 내리신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가만 보니 박스 옆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박스 앞에 앉았다.

"수료생이시죠?"

시작부터 신통방통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리 숨기려 해도 세월의 그림자를 속일 순 없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숙여 나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검정 추리닝 바지에 색 바랜 진녹색 후드티 그리고 검게 물들어가고 있는 하얀 운동화. 영락없는 복학생 몰골이었다. 그런데 박스 안의 여자는 내가 복학생이 아닌 수료생임을 정확하게 맞혔다. 용한 것인지, 내가 더 이상 재학생으로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렇다. 나는 수료생이다. 재학생도, 졸업생도 아닌 수료생. 그러니깐 학생은 아니지만 학생이 아닌 것도 아닌 굉장히 애매한 지점에 나는 서 있다. 물론 수료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졸업한 지 오래될수록 취업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졸업하기 전에 취직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졸업 요건을 일부러 충족하지 않았다. 졸업 요건인 토익 700점을 넘은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950점마저 돌파했지만 학교에 토익 성적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한 학기 정도면 끝날 줄 알았는데, 수료 기간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벌써 3년째라니.

"요즘 취업이 쉽진 않으시죠?"

여자의 어투가 거슬렸다. 걱정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살짝 비웃는 느낌이었다. 예전엔 참 쉬웠나 보죠, 취업을 해본 적이 있어야 요즘이 예전보다 어려운지 쉬운지 가늠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라고 쏘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렇죠, 라고 얌전하게 대답했다.

난, 참 얌전한 사람이다. 특히 면접관들 앞에서는 시아버지 앞에 앉아 있는 조선시대 새색시처럼 굴었다. 요즘엔 그런 새색시가 있지도 않겠지만, 나는 두 손을 얌전하게 모은 채 미소를 지으며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다른 지원자들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발악할 때에도 난 두 손을 무릎에 고정한 채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가끔씩 면접관들에게 칭찬 아닌 칭찬을 듣기도 했다. 참 차분하신 것 같네요. 그러면 나는 더 편안하고 온화한 미소로 화답했다. 부처가 따로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면접장에서 염화미소나 짓고 있는 부처를 받아줄 회사는 없었다.

"그런데 왜 굳이 취업을 하려고 해요?"

부처의 미소를 가진 나조차도 굳어버리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취업을 왜 하려고 하다니.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간혹 면접장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아버지가 좋으세요, 어머니가 좋으세요. 아주 어렸을 때 짓궂은 어른들이나 하던 멍청한 질문이었다. 그런 걸 면접관들이 진지하게 물어오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냥 미소를 지으며 장난으로 넘겨야 할지, 어머니가 좋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저에게 젖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란 존재는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젖을 차지하려는 적수에 불과할 뿐이었죠, 라며 정색하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인적성 시험을 볼 때도 당황스러운 일이 종종 있었다. 불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린 적이 있다. 그게 문제였고, OX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불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O가 정답일까, X가 정답일까. 정답 여부를 떠나서 솔직하게 답하기조차 어려웠다. 불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려 본 적이 있었는지 나조차도 기억나지 않았다. 상당히 난해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상담은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취업을 왜 하려느냐는 둥 여자는 상식을 벗어나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여자의 이야기는 면접관 앞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나조차도 요동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돌아서려다가 돈을 내야 하는 건지 아주 잠깐 고민했다. 여자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박스 우측 면을 툭툭 쳤다. 짤랑짤랑, 동전이 서로 몸을 부비는 소리가 났다. 박스 우측 면에, 너구리가 활짝 웃고 있는 지점에 복주머니가 혹처럼 매달려 있었다.
취업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취업 상담인가요,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컵라면 사 먹고 받은 잔돈 300원)를 꺼내 복주머니에 집어넣고 홱 돌아섰다. 얼마인지 묻지도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고, 알더라도 그 돈을 지불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나는 도망치듯 학생회관을 빠져나왔다.
사흘 후, 나는 박스를 다시 찾아갔다. 상담을 받으려고 간 건 아니었다. 다만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신경질적으로 쑤셔 넣고 돌아선 게 마음에 걸렸다. 처음엔 어차피 다신 안 볼 사이기에 무시하려고 했는데 하루 이틀 지날수록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졌다. 여자가 내 얼굴을 본 것도 영 찜찜했다. 얼마나 지질해 보였을까.
박스는 그날처럼 학생회관 4층 복도 끝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학생회관, 4층, 복도 끝. 그제야 나는 그날 왜 학생회관으로 갔는지, 그리고 4층으로 올라갔는지 떠올랐다.
학생회관 4층 복도 끝엔 동아리방이 있었다. 신입생일 때 누룽지처럼 눌어붙어 있던 곳. 나는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학교 쪽문에 자취방이 있었지만, 나는 자취방보다 그곳에서 훨씬 자주 잠을 청했다. 대부분 술을 마시다가 취해 쓰러진 것이었다. 동아리방에는 항상 빈 술병들이 나뒹굴었다. 치우고 또 치워도 술병은 어느새 나타나 동아리방 곳곳에 영역 표시를 했다. 그만큼 술을 자주, 많이, 전투적으로 마셔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동아리를 ‘술새김터’라고 부르기도 했다. 몸에 술을 새긴다는 의미에서.
원래 이름은 ‘얼새김터’였다. 판화 동아리. 미대생은커녕 미술 학원에도 한번 다녀본 적 없는 내가, 미술 시간만 되면 체육 시간을 애타게 그리워했던 내가, 왜 두 발로 자진해서 그 방에 들어갔는지 그리고 틈 날 때마다 한 손에 조각칼을 쥐고서 죽어라 고무판을 팠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아마도 술 때문이고 사람 때문일 것이다. 고향 선배를 따라갔더니 술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술도 사주고 짜장면도 사주고 삼겹살도 사줬다. 그렇게 며칠 지내고 나니 다음부턴 누가 부르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월드컵이 열리고, 또 우리나라가 승승장구하며 4강까지 올라간 해였다. 게다가 난 신입생이었다. 부어라 마셔라, 모든 게 용납되던 시절이었다. 간혹 선배들의 지루한 설교가 길게 이어질 때도 있었다. 민족, 민주주의, 얼 등등에 핏대 세우던 선배들. 하지만 그런 선배들도 대부분 취직하면서 학교를 떠나갔고, 목소리를 드높이던 선배들은 날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개중에는 취업에 실패해 학교를 떠나지 못한 채 후배를 붙잡고 철 지난 소리를 하는 선배들도 더러 있었다. 우린 뒤에서 그 선배들 욕을 엄청 했다. 루저 새끼,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지, 술 사줄 돈도 없으면서 술은 왜 먹여.
그런데 내가 예전의 그 선배들을 꼭 닮아 있었다. 학교를 떠나지 못한 채 학교를 배회하는 모습이. 물론 나는 동아리방을 찾아가지도, 후배들에게 어설프게 훈계하지도 더더욱 않는다. 오히려 후배들이 나를 볼까 일부러 피해 다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엔 고무판에 판화를 파고, 술에 몸을 찍어내는 후배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대신 학회나 토익처럼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들에 열정을 바치고 있었다. 물론 나를 비롯한 우리 또래의 친구들도 그랬다. 하지만 그건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거나 취업을 앞두고 있을 때 이야기였지 신입생일 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1학년 때부터 미리미리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동아리에도 신입생이 들어오질 않아 곧 없어질 수 있다는, 동아리방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말을 후배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었다. 잘 있나 싶어서, 궁금해서.
“지난번엔 죄송했어요. 경황이 좀 없어서.”
누가 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박스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니. 다행히 복도엔 나와 그리고 박스 안에 있는 여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괜찮아요. 잘못하신 것도 없는데요.”
여자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내가 더 머쓱해졌다. 괜히 왔나 싶었다.
“아… 네. 그럼 혹시 얼마를 더 드려야 하는지….”
“돈 내고 가셨잖아요.”
“그러긴 했는데, 제대로 대가를 지불한 것 같진 않아서요.”
“처음 오셔서 잘 모르시는구나.”
멍한 내 표정을 보았는지 여자가 말을 이었다.
“돈은 내고 싶은 만큼만 내시면 돼요.”
“아….”
정말 괜히 왔다. 여자 눈에 내가 얼마나 병신처럼 보일까. 3000원도 아닌 300원을 내고 도망쳤던 남자가 다시 찾아와서 어쭙잖게 사과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취업 상담?”
나는 차마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의자에 차분히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박스 정면의 너구리 눈 쪽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매표소처럼. 구멍은 제법 많았지만 크지 않아 박스 안이 보이지는 않았다. 눈을 갖다 댄다면 모를까. 여자는 이 구멍들을 통해 밖을 관찰하고 있겠지. 그리고 박스 상단인 사리곰탕 쪽에는 조금 더 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는데, 그 구멍을 통해 빛도 들어오고 환기도 되는 모양이었다.
목소리만으론 여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여자 목소리는 박스 안에서 울려나왔기 때문에 뭉툭했다. 실제 목소리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터였고, 실제 목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나이를 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여자는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어릴 것이라 추정했다. 여자는 그때처럼 이상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취업을 왜 하려고 하느냐, 꼭 대기업이어야 하느냐…. 어린애같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만 해대는데 나이가 많아 봐야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여자는 오히려 나를 어린애 취급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내고 간 300원도 아까울 지경이었고, 전문가인 양 행세하는 여자가 꼴사나웠다.
“그래서 취업 안 하면 어쩌란 말씀이세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걸 왜 저한테 물으세요?”
점입가경이었다. 이러니 정가제로 운영을 못 하지.
“포기하라면서요. 그럼 대안은 있냐고요.”
여자의 태도는 기어코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왜 화를 내세요. 어차피 취업 못 하고 계시잖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럴 바에야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앞에 보이는 너구리 입을 잡아서 쥐어틀고 싶었다.
“포기하면 다 해결되나요? 돈은 어떻게 벌고 뭘 먹고 살아요. 당신이야 상담이라도 하니깐 그렇다 치고. 하긴 이런 것도 꼴에 상담이라고… 그러니 여기서 이러고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악담을 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뭐라고요?”
여자도 화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의자 끌리는 소리가 복도를 갈랐다.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됐어요. 그냥 가세요.”
박스가 씩씩거렸다.
“받을 건 받으셔야죠.”
나는 동전 세 개를 복주머니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돌아섰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계속 떨어졌다. 인적성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마저도 잘 주어지지 않았다. 1단계 서류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나이 때문인 것 같았다. 하긴 화려한 스펙을 가진 젊고 유능한 친구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쩌면 나는 자동으로 걸러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기소개서도 읽어보지 않고서 말이다.
나는 그 와중에 매일 학생회관 4층을 찾아갔다. 박스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박스를 바라만 보다가 돌아섰다. 매일같이 찾아가 놓고 마음을 접길 반복했다. 나조차도 내가 왜 계속 그런 행동을 반복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여자의 어이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 말대로 취업을 포기하는 게 정말 합리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나는 다섯 학기가 지나갈 동안 취업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취업 준비만 하다가 인생을 종 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포기한다고 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방값 내는 날은 한 달에 한 번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를 걱정하는 엄마의 전화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그렇게 학생회관을 드나들수록, 여자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갔다.
여자는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까. 하루 수입은 얼마나 될까. 우리 학교 학생일까. 어디에 살까. 박스 안은 어떻게 꾸며 놓았을까. 출근은 언제 하지. 퇴근은 언제 하고. 예쁠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이철원 기자

“그땐 죄송했어요.”
하루는 용기를 내 박스에 다가가 말했다. 박스에 대고 벌써 두 번째 하는 사과였다. 다행히 여자는 지난번처럼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오히려 왜 한동안 찾아오지 않았냐며 반가워했다.
“그냥 조금 바빴어요.”
여자는 반색하며 취업에 성공했냐고 물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무안했다. 여자는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오늘은 어떤 걸 하겠느냐고 물었다. 취업 상담은 지겨우니깐 다른 걸 해보자고 덧붙였다. 나 또한 취업 상담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궁금한 건, 여자였다.
“오늘은 제 얘기 말고 그쪽 얘기를 했으면 좋겠는데요.”
여자는 흔쾌히 허락했다. 심지어 살짝 들뜬 목소리였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하루에 얼마 정도 버세요?”
여자는 박스가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는가.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테고, 찾아오는 사람이라 해봐야 학생들일 텐데…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데 여자의 한숨은 조금 다른 의미였다.
“글쎄요, 딱히 계산해본 적이 없어서.”
여자는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는데, 나도 맥 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계산해본 적이 없다니. 나라면 사람들이 상담받고 돌아가면 재빨리 복주머니부터 확인할 텐데. 사람들이 얼마나 냈는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가끔씩요. 하지만 얼마를 냈는지 일일이 확인하진 않아요. 큰 의미도 없고.”
왜 의미가 없단 말인가. 그 돈으로 먹고사는 것 아니던가. 이건 그냥 취미 생활이란 말인가. 돈을 따로 벌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이 많단 말인가. 사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복덩이더냐.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하루 수입은 얼만지, 그걸로 생활이 가능한지.
“말씀드렸듯 얼마를 벌었는지 매일 체크하지 않아요. 그냥 번 만큼 써요, 그게 다예요.”
여자는 덤덤하게, 또 단호하게 말했다.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복도에 정적이 찾아왔다. 학생회관이 이렇게까지 조용했나. 방학이라곤 하지만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도서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동아리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얼새김터’라는 명패만이 동아리방을 홀로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예전엔 완전 시장 바닥이었는데….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문이 열릴 만큼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고, 고무판 냄새가 동아리방을 삐져나와 복도에 진동했는데…. 형편없는 실력이었지만 우리가 찍어낸 작품들이 동아리방을, 복도를 가득 메웠는데….
오랜 침묵을 깬 건 너구리였다. 너구리가 입을 통해 무언가를 토해냈다. 종이였다. 여러 번 접힌 종이가 스윽스윽 소리를 내며 너구리 입에서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종이를 주워 펼쳐보았다. 종이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어버렸다.
여자가 그린 것은 ‘졸라맨’이었다. 졸라맨 두 명. 한 명은 박스 앞에, 다른 한 명은 박스 안에 앉아 있었다. 둘은 박스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고, 각자에겐 말풍선이 달려있었다. 말풍선엔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계어가 적혀 있었지만, 찢어진 눈과 입을 보아 둘 다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만은 확실해보였다.
“이게 마음 그리기인가요?”
내가 웃으면서 메뉴를 보며 물었다.
“글쎄요.”
여자도 웃으며 답했다.
“누구의 마음이죠?”
“글쎄요.”
나는 자취방에 돌아와서도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그림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었다. 비록 졸라맨을 그리긴 했지만 여자는 그림에 꽤나 소질이 있는 사람 같았다. 몇 개 되지 않는 선이었지만, 힘이 있었다.
고무판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새까만 고무판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하얀색 도화지를 보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다. 누군가는 하얀색 도화지를 보면 그 가능성 때문에 가슴이 부푼다는데, 나에겐 무척 큰 부담이었다.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게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새까만 고무판은 달랐다. 고무판은 이미 채워져 있고, 내가 할 일은 조금씩 덜어내는 것뿐이다. 필요 없는 부분을 파낸 후 찍어내면, 떨어져 나간 그 부분 때문에 작품이 되니까.
조각칼로 고무판을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파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만. 대부분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여자가 몇 개 되지 않는 선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학교는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 더위를 피해 산책을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 그리고 도둑고양이들이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잘 말려둔 그림을 돌돌 말아 쥐고 어둠을 뚫고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여자에게 판화로 찍어낸 그림을 주고 싶었다. 여자가 모르게 너구리 입에 살짝 물려 놓고 올 참이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여자가 박스에 있을 리는 없었다.
4층으로 올라가 모퉁이를 돌 때였다. 나는 멈칫 설 수밖에 없었다. 박스에 누군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퉁이에 몸을 숨긴 채 고개를 빼 지켜보았다. 형광등은 모두 꺼져 있고 달빛만이 복도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실루엣만 아른거렸다. 체구가 작은 남자이거나 여자인 듯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박스를 살짝 움직이더니 몸을 숙여 박스 뒤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언가를 정리하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여자… 이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한 걸까….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봐서는 안 되는 걸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숨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정리를 마친 여자는 집으로 돌아갈 테고, 돌아가려면 이쪽을 지나갈 터였다.
생각한 대로 여자가 박스를 나와 이리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복도에 여자의 발걸음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덩달아 내 심장도 요동쳤다. 그런데 여자는 끝까지 걸어오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
화장실이었다. 센서가 작동하면서 화장실 불이 켜졌고, 이내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양치를 했고 세수를 했다. 머리라도 감는 듯 물소리는 쉬이 그치지 않았다. 여자는 화장실에 꽤나 오래 있었다.
굳이 왜 여기서… 집에 가서 하면 될 텐데… 무섭지도 않은가….
물소리가 그치고 여자가 화장실을 빠져나와 다시 박스를 향해 걸어갔다. 화장실 불빛에 비친 여자의 한 손엔 수건이, 다른 한 손엔 세면도구를 담은 자그마한 목욕 바구니가 있었다. 여자의 뒷모습은 아담했다. 단발머리에 마른 체형이었다. 이쪽으로 걸어왔다면 얼굴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내 아쉬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화장실 불마저 꺼져버렸다. 하지만 여자는 곧 나올 것이었기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집에 가려면 어쨌든 여기를 지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여자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박스 우측 동아리방으로. 그곳은 내 동아리방 맞은편에 있는 미술 동아리방이었다. 이내 드라이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머리를 말리는 소리였다. 그러곤 끝이었다.
여자는 끝내 동아리방을 나오지 않았다. 동아리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불빛마저 잠적해버렸다. 나는 숨죽인 채 동아리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 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댔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고요했다. 동아리방도, 박스도, 복도도.
나는 가져간 그림을 너구리 입에 물려놓고 학생회관을 빠져나왔다.
아침 6시, 여자는 동아리방을 나와 2층 샤워실에 가서 씻는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학교를 돌며 산책한 후 학생회관으로 돌아와 매점에서 샌드위치나 김밥 혹은 도시락 등을 사서 박스에서 먹는다. 점심은 주로 컵라면으로 해결한다. 때론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기도 한다. 배달부는 음식을 박스 옆에 두고 복주머니에서 알아서 돈을 가져간다. 배달부가 가면 여자의 손이 박스 우측 하단의 쥐구멍을 통해 나와 음식을 챙겨 간다. 밥을 먹을 땐 박스 상단 뚜껑을 연다. 다 먹은 후 똑같은 방법으로 그릇을 박스 옆에 두면 배달부가 알아서 찾아간다.
박스를 찾는 손님은 간헐적이다. 끊일 듯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넘쳐흐르지도 않는다. 매일 찾아오는 단골손님도 있다. 대부분 학생이고 간혹 청소 아주머니나 교수가 찾아오기도 한다. 박스 앞에서 직위는 무소용하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눌 뿐이다. 짧게는 3분, 길게는 3시간. 대화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별 내용은 없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대책 없는 이야기를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흡사 아주머니들의 수다를 닮았다. 때때로 그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복도가 떠나가도록 웃고, 또 울고, 또 싸운다.
여자는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박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가끔씩 화장실을 가거나 동아리방에 들어갈 때만 박스를 나올 뿐이다.
동아리방엔 무언가를 가져다 놓기도 하고, 챙겨 나오기도 한다. 여자 외에 미술 동아리방을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간혹 찾는 이들도 여자와 박스엔 관심이 없다. 여자가 미술 동아리방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아니 학생회관 4층 전체를 여자가 전세 냈다고 해도 될 수준이다.
학생회관 꼭대기 층인 4층에 있는 동아리는 대부분 미술, 소설, 연극 등 예술과 관련이 있다. 각자의 동아리방을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아주 간헐적이며,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지도, 소설을 쓰지도, 연극을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밥도 먹지 않는다. 전공 서적을 챙겨 가거나 잠깐 쉬고 가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는 주5일 근무제를 고수한다. 주말엔 쉰다. 학생회관을 벗어나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영화도 보고 운동도 한다. 다만 잠은 동아리방에서 잔다. 그리고 평일엔 다시 학생회관에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람을 만난다.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여자를 몰래 관찰했다. 그러고 내린 결론.
여자는 학생회관에서 살고 있다.
여자와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나이, 학번, 학교 모두 같았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고 있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우리는 학생회관 4층 복도 끝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동아리방에서 각자 활동했다. 나는 조각칼을, 여자는 붓을 들었다. 똑같은 시기에 활동했으니 오가며 많이 봤을 터였다. 어쩌면 함께 술을 마셨을지도 모른다. 예전엔 다른 동아리 사람들과 모여 술도 참 많이 마셨으니깐. 하지만 나는 여자가 생각나지 않았고, 여자도 나를 예전에 본 기억은 없다고 했다.
여자는 나처럼 수료생이었다. 논문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취업 때문에 수료 상태로 남았는데, 이젠 의미가 없다고 했다. 여자는 더 이상 지원서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의 삶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불편하지만 나름 낭만적이라나. 박스에 사는 게 낭만적이라니, 하마터면 미친 거 아니냐고 말할 뻔했다.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도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겠지만.
여자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그냥 웃었다. 아니, 박장대소했다. 어찌나 크게 웃는지 박스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여자는 이런 종류의 질문에 항상 그런 식으로 응대했다. 꿈, 미래, 현실… 나는 진지했지만, 여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가끔씩은 화를 내기도 했다. 재미없는 이야기 할 거면 오지 말라고, 입 아프다고.
여자는 종종 그림을 그렸다. 여자가 그렇다고 말해줬다. 여자의 동아리방은 아마도 여자의 작품으로 도배되어 있을 것 같았다. 보여 달라고 떼를 써본 적도 있었는데 여자는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그럴 때면 졸라맨을 잔뜩 그려서 너구리 입으로 뱉어냈다. 공모전 같은 곳에 응모라도 해보라고 했더니 여자는 질색했다. 해본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의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여자는 그냥 그림을 그릴 뿐이다.
삼삼오오영구영구. 비밀번호는 그대로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영원하자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비밀번호가 아직 동아리방을 지키고 있었다. 열 명은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이 여전히 동아리방 가운데 놓여있었고, 여기저기서 주워 왔던 제각각의 의자들이 그 주변에 나뒹굴고 있었다. 창 아래 소파도 그대로였다. 속살이 터진 것조차. 이가 빠진 낡은 책장이 예전처럼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엔 46리터 미니 냉장고가 윙윙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엔 전자레인지가 놓여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도 어디 가지 않았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책, 운동화, 단체복, 군화, 군복, 구두, 바람 빠진 농구공, 숟가락, 젓가락, 휴대용 가스 버너….
다만,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없기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먼지가 자욱하게 쌓여 있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물청소를 하고,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운 의자는 밖으로 뺐다. 넓은 테이블에는 이불보를 깔았다. 작고 낮은 테이블을 주워 와 소파 앞에 두고, 그 위에 스탠드를 놓았다. 책장 정리를 하고, 남는 칸에는 옷을 개어 넣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군화나 책, 구두는 버렸다. 휴대용 가스 버너는 그대로 두었다. 나뒹굴던 자그마한 박스를 쌓아 신발장을 만들었다. 창틀과 책장 사이를 빨랫줄로 연결해 수건을 널어두었다. 그리고 방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여기저기 적당한 곳에 배치했다. 살림살이 자체가 별로 없었기에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나름 사람 사는 구색은 맞춘 셈이었다.
전에 살던 방과 비교하면 구색 맞춘 수준 이상이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곰팡이들과 함께 사는 것보단 여기가 훨씬 낫다. 방도 훨씬 넓어졌고, 4층이기에 햇빛도 잘 들어온다. 책장도, 소파도 있다. 무엇보다도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방값을 올리려고 하는 집주인을 생각하면 그 또한 별 차이 없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생겼다.
“이제 컵라면 말고, 끓인 라면 먹어요.”
이사하고 첫 끼는 라면이었다. 여자를 내 방으로 초대했다. 냄비에 너구리 두 마리가 끓고 있었다. 날계란과 햇반도 준비했다. 김치는 여자가 가져왔다. 여자는 왜 미처 이 생각을 못 했는지 한탄했다. 가스 버너 하나 사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박스에는 동물들이 없던데요.”
매점에서 라면 박스를 유심히 보았는데 너구리도, 새우도, 곰도 없었다.
“제가 그린 거예요.”
여자가 말했다. 여자의 박스는 나름 핸드메이드인 셈이었다.
“감쪽같네요.”
“하나 만들게요?”
여자가 젓가락으로 면을 풀며 말했다.
“아뇨. 저는 상담 같은 거 못 해요.”
“앞으로 어떡할 거예요?”
대답이 없자 여자가 말을 이었다.
“계란도 풀까요?”
여자는 날계란을 깨뜨려 냄비에 넣고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무섭지 않으세요?”
흩어지는 계란을 보며 내가 물었다.
“뭐가요?”
“그냥… 전부.”
“잘 모르겠어요. 일단 먹어요.”
“네.”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데, 눈물이 찔끔 나왔다. 다행히 안경에 김이 서렸다. 나는 라면을 먹지 않은 채 후후 불기만 했다.
“뜨거운 거 못 먹어요?”
여자가 신기한 듯 물었다.
“아뇨.”
나는 대답과 동시에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말했다.
“맛있네요.”
그리고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여자도, 나도.
<끝>

성석제(소설가), 김인숙(소설가)

소설 부문 심사평
가장 소박한 그릇에 담아낸 ‘7포 세대’ 이야기


본심에 올라온 작품 8편을 읽었다. 다양한 주제와 소재들을 다루고 있어 읽는 즐거움을 주었으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묵직한 울림을 찾기에는 다들 어느 정도씩 어려움이 있었다. 세상의 끝을 다루는 이야기는 너무 익숙하게 읽히고, 희망이 파탄 난 현실을 다루는 이야기는 아주 새롭게 읽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설 몇 편은 단단한 문장, 시적인 구성들로 참신하게 보였다. 미지의 세계를 무대로 한 ‘스콤보 운두사’ ‘고래의 눈’ 그리고 ‘교차세계’ 등은 아름답거나 묵중하게 읽혔다. 다만 이야기를 뚫고 나오는 ‘전언’이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전하고자 하는 말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이야기를 방해하는 작품도 있었다. 하고 싶은 말과 그것을 담아내는 이야기의 그릇, 그 사이의 균형과 경계를 찾는 건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에게나 오래된 작가에게나 늘 어려운 일이다.
최종적으로 오래 논의를 했던 작품은 ‘박스’와 ‘겨울, 가죽 광택제’였다. ‘겨울…’은 빈틈없는 구성에 안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의 끝, 종말의 지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그것은 기실 오늘의 현실과 닮아 있는 것일까? 익숙한 주제다. 그 익숙함에 새로움을 입히지 못했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박스’는 그와 완전히 다른 지점에 있다. 5포 세대라고 하더니 6포가 되고, 7포가 되는 세대의 이야기다. 역시 익숙하고, 많은 젊은 작가가 시도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가장 진부하거나 가장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오히려 그 이야기를 가장 소박한 그릇에 담아냈다. 소박하고, 잔잔하고, 너무나 미약한 목소리라 오히려 그것이 마음을 울렸다. 무엇이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대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렇게 바닥에 닿아,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소박함과 단순한 구성이 이 이야기의 장점이 될 수는 있으되 앞으로 계속해서 작품을 쓰고, 발전해나가야 할 작가의 단점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렇지 않을 거라는 쪽에 손을 들었다. 큰 이야기를 능숙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보다 작은 이야기를 미숙하나마 성실하게 해내는 것이 이제 새로 시작하는 작가로서 더 큰 미덕이리라 믿었다. 이 작품의 끝에 주인공은 묻는다. ‘무섭지 않아요?’ ‘뭐가요?’ ‘전부 다요.’ 이제, 그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전부 다’에 무섭게 부딪치게 될, 그러나 그것이 그의 문학적 세계가 될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한다.

소설 당선소감
한 편의 영화처럼나에게도 이런 일이

잉글랜드 축구팀 아스널 팬입니다. 아스널 경기는 아기자기하고 쉽게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 흥미롭습니다. 다 잡은 경기를 내주기도 하고, 질 것 같은 경기를 뒤집기도 합니다. 소위 말하는 ‘극장경기(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로운 경기라는 뜻)’가 많습니다. 경기를 보고 나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가끔 생각하게 됩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제 기분이 그랬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계좌 번호를 묻지도,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으시더군요. 대신 소설을 파일로 보내달라고 하셨습니다. 설령 보이스피싱이라 할지라도 아쉬울 게 없다 싶어 소설을 바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상 소감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제 소설에 손을 내밀어 주신 심사위원님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쉽게도 소설로 무언가를 이뤄보겠다는, 어떤 소설을 쓰겠다는 당찬 포부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즐기며 쓰겠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즐기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쓰겠습니다. 소설 쓰는 사람이 소설가라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쓰고 또 쓰겠습니다.
일자무식이었던 제게 소설을 맛보는 방법을 알려주신 박상우 선생님과 소행성 식구들에게, 당선 소식을 듣고 아낌없이 축하해주시고 놀라워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좋은 소식 있다는 저에게 임신했느냐고(저는 결혼을 앞둔 남자입니다) 물어본 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제 삶의 원동력이 자 버팀목이자 전부인 엄마, 아빠, 동생에게 뜻밖의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제 소설을 가장 먼저 읽는 고통을 견뎌준, 제 소설보다 더 보잘것없는 저를 받아준 여자친구에게 사랑한다고, 아기자기하게 잘 살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1985년 부산 출생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성균관대 연극패 ‘몸말’ 31대 연출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01/2017010100681.html